[메아리] 정치와 통치
1999/01/14(목) 17:07
결단력과 추진력은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이다. 정치지도자의 덕목으로 가장 많이 꼽히고 있는 것이 아마도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경제적 위기상황을 맞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대단한데 그가 정치인으로서 평가받고 있는 대목도 바로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런 자질을 높이 쳐주고 있는 것이 정치인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국민정서다.
그러나 정치 경제가 함께 잘 발전돼 있는 선진국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은 그의 회고록에서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결단력과 설득력을 꼽았다. 탄핵에도 인기가 여전한 클린턴이나 요즘 한창 주가가 치솟고 있는 영국의 블레어나 독일의 슈뢰더 같은 지도자들도 결단력과 함께 설득력을 겸비한 것이 큰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단력은 같은데 추진력과 설득력을 서로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는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데 결단력이 필요한 것은 어디서나 사정이 마찬가지인 모양이지만 결단을 내린 사안을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한쪽은 그냥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설득을 중시한다. 이해와 동참을 촉구하고 거기서 힘을 얻는 것이다.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권위적인 풍토에 길들여져 있는 데 반해 선진국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추진력」보다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위적인 지도자와 민주적인 지도자, 보스와 리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차별점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더는 사람을 인도하고 보스는 사람을 부린다. 개성과 창의와 자율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리더를 선호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통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믿음직한 보스를 원한다. 일을 시키지만 책임도 져주는 사람이 좋은 것이다. 시키는대로만 하고 책임도 안지는 노예적 근성이다.
우리의 국민정서는 아직도 보스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고 정치지도자들도 그런 쪽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시대적 상황이 달라지고 권위주의적 통치로는 다스릴 수 없는 자유 민주의 세상이 됐다는데도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낡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아직도 통치에 길들여진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권위적인 제왕(帝王)정치가 바로 통치다. 통치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고 절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 정치에서는 모든게 상대적이고 절대란 있을 수 없다. 통치에는 일방적 지시와 명령만 있고 복종이나 거역만 존재할 수 있다. 정치에는 충돌과 대립과 갈등이 있고 때로는 혼란도 있다. 통치에는 반대수단이 오로지 저항과 투쟁뿐이지만 정치는 대안과 타협, 조정과 양보등 다양한 형태로 반대를 융화, 수용할 수 있다.
통치에 필요한 것이 추진력이고 정치에 필요한 것이 설득력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설득이다. 개발독재 시대에 필요했던 권위적 통치를 버리고 시장경제 시대에 필요한 정치를 발전시켜 나가야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면 그에 맞추어 정치인들의 사고와 행동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설득」의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박 무 (편집국 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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