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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역사는 돌고 돈다 (한기봉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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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역사는 돌고 돈다 (한기봉 국제부장)

입력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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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역사는 돌고 돈다 (한기봉 국제부장)

1999/01/13(수) 15:44

서기 1000년 1월 1일. 첫번째 밀레니엄을 맞는 그날 자 신문들에는 무슨 기사가 실려 있었을까? 우문이다. 신문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은 15세기다.

그러나 미국의 독자들은 11일 1,000년 전 그 날의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밀레니엄 특집을 내면서 1000년 1월 1일 월요일자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본지 13일자 7면 보도). 흥미를 끄는 저널리스틱한 발상이다.

타임캡슐을 타고 그 날로 돌아가 보자. 머릿기사는 「No Apocalypse Now」란 제목. 새 천년(Y1K)이 아무런 재앙 없이 도래했다고 선포하고 있다. 당시의 「밀레니엄 버그」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이었나 보다. 지면 한 귀퉁이에는 당시의 열강판도도 그려져 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송나라가 단일파워를 형성하고 있고 유럽, 지중해권은 신성로마제국과 비잔틴, 이슬람제국 등 3강의 다툼이 치열하다.

칼럼도 있다. 제목이 눈길을 끈다. 「문제는 교육이야, 이 바보야」. 92년 미국의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 진영이 사용해 인상을 남긴 선거구호를 빗댄 것이다. 당시 46세의 풋내기 정치인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1,000년 전의 칼럼은 이렇게 묻고 있다. 왜 서양은 동양에 뒤지는가? 어떻게 해야만 융성한 동양을 따라 잡을 수 있는가? 서양의 눈에서 쓴 반성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양은 경제성장을 침략과 약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 전략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학문과 기술의 발전이 번영을 좌우한다. 유럽은 지금 당장 교육에 매진해야 한다」.

이 칼럼에서 서양은 분열돼 있고 미개한 신흥국가로 묘사돼 있다. 반면 이슬람·비잔틴 제국과 중국의 송나라는 일찍이 대학 등 교육기관을 세워 지식과 기술을 닦고 이를 국가발전에 응용,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부러워하고 있다. 칼럼은 제목처럼 사뭇 비분강개조다.

그랬다. 잊고 있었지만 동양은 서양의 확실한 스승이었다. 근세에 접어들면서 역사는 대역전(大逆轉)했지만. 그래서 1,000년 전 「동양을 배우자」고 외치는 이 가상칼럼은 지금의 우리를 더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고약한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

절망을 되씹고자 하는 게 아니다. 1,000년 전과 지금의 동양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희망의 부재를 말하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본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역사란 기본적으로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한 세기도 아닌, 한 세대만을 조망할 수 있을 뿐이다. 과거 100년의 변화는 미래의 10년, 아니 1년에 축약될 수도 있다.

새 밀레니엄의 모습은 강한 자나 약한 자에게나 다 불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기계·정보문명에 대한 반작용과 부작용, 일극(一極)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이른바 슈퍼파워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언제든 쇠퇴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는 아니겠지만. 반항아 모하메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의 주장처럼 「야수적 자본주의」의 자리를 아시아적 가치와 덕목과 문화가 대신할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지금은 초조하지만, 역사를 관통해 조금 멀리 바라볼 때, 당장 우리 세대는 아니라 할 지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다를 수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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