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문회서 '비리조사'라니
1999/01/13(수) 16:02
경제청문회를 통해 전정권의 정치자금비리를 밝히겠다는 국민회의의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집권여당으로서 정치현안을 다루는 원칙과 철학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하는 어리둥절한 발상이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국정조사 대상은 정책만이 아니고 불법비리행위가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경제청문회에 대한 여당의 기본입장이 명백히 바뀌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공당의 신뢰를 무색케 한다.
경제청문회는 얼마전 국회에서 여당에 의해 날치기로 안건처리가 강행됨으로써 실현가능성이 더 희박해져 있는 상황이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잘못을 규명하고 이를 교훈으로 삼자면서 야당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는 청문회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누가 봐도 회의적이다. 청문회 안건이 단독처리됐을 당시 여당만의 청문회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마당에 청문회를 정치자금과 관련된 비리조사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나서니 여당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여권은 한풀이나 표적사냥식 운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정책적 과오를 따지는 생산적 청문회 운영을 누누히 강조해 왔다. 지난해 11월 여야 총재회담에서 합의된 청문회도 비리조사형의 청문회는 아니었다. 이번에 비리를 강조하는 발언은 애당초 청문회에 대한 여당의 본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여당이 청문회를 제대로 할 생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합리적 조건들을 놓고 야당과 성실한 협의를 하는 것이 일의 순서이다. 이제와서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소극적으로 돌아서는 기미를 보이고, 단독안건처리의 정당성이 무색해지자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과거정권 비리도 다루어야 한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것은 집권당의 태도가 아니다. 전정권의 비리를 미리부터 거론하면 야당을 압박하는 여론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야당은 더욱 멀어지고 여론 역시 이런 식의 단편적인 정치전략을 찬성하지 않을것이다.
국민회의 주장대로 전정권에 엄청난 비리가 있다면 그것은 정식 수사로 파헤쳐야 한다. 또한 그 비리가 김영삼전대통령의 대선자금에 관한 문제라면 또다른 시비와 혼란을 초래할 수 도 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경제청문회는 한보나 기아청문회가 아니다. 여당이 공개적으로 나서 이를 혼돈시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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