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염상섭의 '묘지'
1999/01/12(화) 18:36
횡보 염상섭(1897~1963)이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소설가 10인」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한국일보가 신년특집에서 문학인들의 투표로 선정한 이 목록에서 횡보는 「토지」의 박경리에 이어 두번째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되었다. 그의 대표소설인 「만세전」은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설이다. 도쿄유학생이 조혼한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귀국길에 올라 장례를 치른 후 돌아가는 줄거리다. 주인공의 귀국체험을 통해 조선의 참담한 현실이 증언된다.
■서울로 가는 기차에서 그는 갓장수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내지(일본)에도 공동묘지가 있어요? 행세하는 사람이야 좀 다르겠죠?』『일본에서는 주로 화장을 지내기 때문에…뼈를 갖다 묻고 목패든지 비석을 세운다우…죽는 사람마다 넓은 터전을 차지하다가는 세상에 무덤만 남고 말지 않겠소?』 죽음과 장례가 모티브인 이 소설은 묘지문제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하고 있다. 1922년 발표될 당시 「만세전」의 제목은 「묘지」였다.
■일본의 산수가 한국보다 수려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산이 옷을 갈아입는 봄 가을에 여행해 보면 일본화처럼 몽롱하고 예쁜 색의 산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멀어져 간다. 대부분 메이지유신(1868) 무렵부터 공들여 가꾼 인공림인데, 거기에는 산을 한 굽이 돌 때마다 무더기로 나타나는 우리 식의 묘지가 없기 때문이다. 「만세전」의 배경이 1910년대인데, 한 세기가 다 지나도록 우리는 묘지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묘지를 공동묘지로 유도하려던 일제의 노력이 실패한 것은 항일의식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해방 후 묘지 면적과 사용기간을 제한하려던 시도 역시 번번이 좌절돼 왔다. 최근 국회 법사위원회는 결실을 보는 듯했던 묘지법 개정안을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계류시켰다. 과연 미국이나 일본 등의 국민들은 묘지를 크게 만드는 행복 추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보다 불행한 것일까.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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