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의 감독] (1) 임권택
1999/01/11(월) 17:53
문화의 시대를 예고하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향해 감독들이 뛴다. 스크린쿼터제의 위기, 대기업의 영화사업포기로 더욱 힘들고 어려워진 99년. 한국영화의 미래와 힘을 준비하는 그들을 만나본다.
거장이 97번째 작품을 시작했다. 새 천년을 앞두고 임권택감독(63)은 「춘향뎐」을 잡았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다』는 작품. 그런데 왜 지금인가. 13차례나 영화로 만들었고, 너무나 유명해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을. 『우리 문화적 개성이 이 시대만큼 중요한 때는 없었다. 세계화 과정에서 전통문화를 가지고 살지 않으면 우리 정신이 없어진다』
세기말에 느끼는 그의 위기의식은, 시장점유율이 25.5%는 되지만 젊은 층만 겨냥하는 너무나 얇은 한국영화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한국사람, 한국인의 삶, 역사도 보이고 그러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넓고 두꺼운 영화. 「서편제」이후 5년동안 그는 그것을 찾아다녔다. 도자기, 차(茶)문화도 들여다 보았다. 그때마다 춘향이가 가슴을 밀고 올라왔다. 그 이유를 그는 인간문화재 조상현의 판소리 「춘향가」를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판소리가 주는 감동과 멋에 소름이 끼쳤다. 전에는 결코 몰랐던 새로움이었다』
이 감동을 농밀하게 잡아내기만 하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나온 영화 춘향전들을 보며 뭔가 채워져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다. 억지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만들고 잡아낼 필요도, 구성을 고칠 이유도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판소리를 들으면 허구의 주인공들은 살아있듯 생생하다.
판소리를 따라가는 그의 영화는 추임새를 하듯 즉흥을 마음껏 살리고, 현대적 시각으로 열녀의 가치와 저항정신, 사회부조리도 해석한다. 『왜 지금도 「춘향뎐」이 유효한가를 설명하고 세계적 보편성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춘향뎐」에 대해 물으면 그는 먼저 판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그런 다음 영화를 보면 울림도 크고 귀도 열릴 것이라고 했다. 40여년동안 쉬지않고 메가폰을 잡아 21세기에 남을 고전인 「만다라」와 「서편제」를 남겼으면서도 때론 「창」(97년)처럼 우리에게 실망도 준 임권택 감독.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것을 위해 또 모험을 시도한다. 『점점 어려워. 이 나이에 왜 이런 어려움에 빠져드는지…』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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