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과뒤] 강야의 길 (이계성 정치부차장)
1999/01/10(일) 17:27
올 겨울들어 최대 한파가 몰아닥쳤던 지난 주말, 한강에 연해 있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의 칼바람은 살을 에였다. 한파는 의사당건물 내부에도 몰아치고 있었다. 야당의원들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철야농성하는 본회의장의 측은한 풍경은 DJ정부들어 최대의 정치한파가 몰려와 있음을 한눈에 입증했다.
「정치사찰」과「법안 날치기」를 규탄하는 내용을 휘갈겨쓴 대자보들이 단상에 내리걸린 모습은 엄동설한에 줄줄이 내리걸린 고드름 바로 그것이었다.
정치권이 격렬한 전쟁이었던 지난 대선의 「전후(戰後)처리」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증오와 대치 갈등이 여전히 여의도 정가를 횡행하고있는 것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관용과 아량, 그리고 패자에게 정치적 생존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한 DJ정권의 정치력부족에 있다고 본다.
정권교체후 새 정치환경속에서 야당의 비전을 정립하지 못한 한나라당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DJ정권과의 첫 관계설정을 JP총리인준반대로 시작했다. JP총리를 순순히 인정해주면 DJP공동정부에 강한 구심력이 생기고 거기에 구조가 복잡한 당내의 원심력이 맞물려 당자체가 분해되어버릴 것이라는 위기감때문이었다. DJ정부출범 당시 한나라당의 의석은 161석. 96년 4.11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얻은 139석에 무소속과 자민련의원들을 끌어들여 만든 거대의석이었다.
그러나 이 의석은 YS정권의 권력과 정치자금에 의해 부풀려진 거품이기도 했다. 정권을 내놓은 뒤에, 즉 풍부한 정치자금과 안기부 검찰 등의 권력을 넘겨준 상황에서 그 규모를 유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한나라당은 의원머리수로 한 것이 없다. 과거 전두환 노태우 YS정권에 비해 훨씬 취약한 DJP공동여당에 연거푸 3차례나 날치기를, 그것도 변변히 손도 못써보고 당했다. 비리의원들의 체포동의안 처리저지정도가 머리수의 도움을 받았을까. 한나라당의 정답은 버릴 부분은 떨어내고 적정규모의 순도 높은 정예야당으로의 구조조정이었다.
그것이 장외투쟁 농성 지역감정 끌과 망치 등 21세기로 로 가는 다리를 건너며 과거의 강물에 버려야할 정치적 연장들에 의존하지않는 「강야」(强野)로 거듭나는 대전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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