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컴퓨터와 책
1999/01/10(일) 17:33
「DURAL282 21시간34분… 천국열차 10시간 45분…ROOT5NG 9시간 31분」 국내의 한 PC통신회사는 매일 가입자ID별로 그날의 대화방 사용시간 100대 순위를 게시한다.
며칠전에 게시된 이 순위를 보면 사용자들은 하루 9시간에서 21시간까지 채팅에 몰두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추세는 거의 매일 비슷하다.
실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으로만 봐서는 식사는 언제하고 잠은 언제 자는지,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 있을 그 세계를 알 길이 없다.
■PC통신의 여기 저기를 들여다 보면 통신세계 나름의 독특한 영역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밖에서는 듣지 못하는 통신은어들이 따로 있고, 평소 접하기 어려운 연령층의 요즘 생각들이 어떤지를 새롭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다.
컴퓨터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조류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조류는 「컴맹」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이미 주류문화의 한편을 점하고 있다.
■얼마전 통계청이 발표한 97년 현재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국내 컴퓨터 보유대수는 1,000명당 41.8대이다. 또 PC통신가입자 수는 총311만여명으로 인구 1,000명에 67.8명꼴이다.
이는 유료가입자만의 집계로 전년도와 비교하면 두배 이상 폭증한 수치이며 이전에도 해마다 같은 추세로 증가해 왔다. 물론 컴퓨터의 메카라고 할 미국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준이다. 국내 컴퓨터 보급률은 미국의 중하위계층인 연2만달러 소득층과 비슷하고 인터넷사용자는 절반수준이다.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뉴 미디어는 활자나 TV세대의 문화를 거세게 밀어내고 있다. 소위 「디지털문화」는 사고나 행동양식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위력으로 구 미디어세대를 위축시킨다. 여기에 대처하는 길은 수용과 적응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구 미디어를 배제할 일은 아니다. 가령 책으로 말하면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서도 볼 수 있다. 커피를 마시다 왈칵 쏟아도 안전하다. 하지만 컴퓨터는 그렇지 못하다. 현명한 선택은 신·구의 병합일 것이다. /조재용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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