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첫 회고록] 이달말 일본서 출판
1999/01/08(금) 17:35
97년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비서 황장엽(黃長燁)씨의 첫 회고록 「김정일(金正日)에의 선전포고」가 이달말 문예춘추(文藝春秋)사에 의해 일본에서 출판된다. 황씨는 이 회고록에서 김정일의 통치술과 성격 등을 신랄히 비판하고 북한은 햇볕정책을 수용할 태세가 되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회고록은 10일 발행되는 월간 문예춘추 2월호에 「나는 김정일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제목으로 요약 게재됐다.
17세 때부터 김정일(金正日)을 지켜 보았다는 황씨는 회고록에서 『인민이 굶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김일성은 놀라고 걱정하지만 김정일은 전혀 놀라지 않는 냉정하고 이기적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지런하고 머리가 잘 돌았던 김일성이 74년 김정일이 실권을 장악한 후 점차 변해갔다는 점에서 김일성의 과오는 결국 김정일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듯 김정일은 이해관계를 따지는 능력은 비상하며 군부와 당지도부를 완전히 장악하는 정치적 수완을 갖추고 있다』며 『아버지와 인민을 속이는 능력은 발군』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대외관계에 대해 『90년 시작된 북한의 대일 교섭은 배상금을 끌어내자는 것이 기본 목적』이라며 『미국과의 교섭도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일본이 배상금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은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바라지 않으며 관계개선으로 국제적 고립상태를 피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김정일은 내가 망명하기 전까지 미국 대사관을 평양에 두는데 반대, 굳이 둔다면 나진·선봉지구에 두도록 지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서는 『당의 보고 경로를 통해 95년에 50만명, 96년에 100만명이 아사했음을 확인했다』며 98년까지 모두 350만명이 굶어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황씨는 『북한 군부내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무성했다. 96년말에는 소대장 이상의 결혼금지령까지 내려져 전쟁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고 밝히며 기아와 전쟁발발 가능성이 망명동기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이후 군수 산업이 마비상태에 빠진데다 군의 사기도 저하했다』면서 『자기중심적인 김정일이 자신이 희생될 전쟁을 할 용기가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아무리 햇볕을 쬐어도 북한은 옷을 벗지 않을 것』이라며 『망명전 반정부조직에 대해 군대가 봉기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권했고 지금은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황씨는 끝으로 『김정일은 반드시 나에게 테러를 가해 올 것』이라며 『앉아서 죽기보다 김정일의 총알을 맞고 죽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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