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선언
1999/01/09(토) 14:03
2000_1년의 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까지 한 해밖에 남지 않았다. 2000년을 맞기 위해 이 한해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1천년의 단위에 비하면 1년은 너무나 짧다.
1천년만의 지복(至福)의 해를 우리가 당대에 맞이한다는 것은 여간한 행운이 아니다. 우리는 2000년의 주인공이자 그 역사적 현장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 성스러운 해를 함께 맞이하는 동시대인이라는 것은 벅찬 축복이다. 대세기(大世紀)의 대회전차에 동승한 운명적인 유대감과 시대적 공속감을 갖게 한다.
새 밀레니엄의 기념이 단순히 커다란 달력장을 넘기는 소리로만 그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축제여야 하고 성사여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의 계기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2000년 맞이는 아무 감격도 없고 준비도 변변찮다. 2000년은 우리에게 어떤 해가 되어야 할 것인가.
로마 교황청은 이미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했다. 희년은 구약성서에서 7년만의 안식년이 7회 끝난 다음 해인 50년째를 은사의 해로 공포한데서 유래했다. 희년이 되면 숫양의 뿔로 만든 요벨의 나팔을 불어 노예를 해방시키고 팔렸던 재산을 돌려주었다. 희년을 성년이라고도 하는 가톨릭에서는 1300년에 첫 희년을 선포하면서 100년만에 한 해씩 희년을 지키도록 했으나 그 후 교황에 따라 50년에 한 번, 또는 25년에 한 번씩으로 희년이 바뀌기도 했다. 희년에는 교황이 죄를 고백한 신도들에게 면책을 주는 대사가 관습이 되었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을 대희년으로 정한 교황 바오로 2세는 작년에 교서를 통해 대희년을 대사면의 해로 선언하고 올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되는 이 기간중 가톨릭 신자는 회개와 선행을 하면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고 공표했다.
로마교황의 교서는 비단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인류를 향한 호소이기도 하다. 교황은 대희년을 맞아 부국들이 제3세계의 빈국들이 안고있는 부채를 탕감해 주도록 촉구하기까지 했다.
밀레니엄이 교계만의 것이 아니듯이 대희년 또한 종교의 의식만일 것도 없다.
대희년의 정신은 회개와 용서다.
우리나라의 20세기는 죄인의 세기였다. 전반은 나라를 빼앗긴 죄인이었고 후반은 나라를 남북으로 동강낸 죄인이었다. 게다가 정부수립 후의 반세기는 그 위대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부를 위한 축재의 역사가 축죄의 역사였다. 부정부패의 죄를 거름으로 하여 자란 나라나 다름없다.
지금 그 죄값을 치르는 IMF체제의 고통속에서도 아직 그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세기의 마지막 해에 와있다. 지금 코앞에서 정치인 비리 수사를 둘러싸고 국회가 상투적으로 파행하는 어지러운 정국도 이 죄의 소산이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새 세기를 맞으며 이 죄들을 모두 회개해야 하고 그러고는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는 2000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참여하는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세계지도자들의 「2000년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니 「서울선언」은 빛바래기 쉽다.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세계의 평화 이전에 나라의 평화가 급하다.
우리는 커다란 용서에서 커다란 화해로, 커다란 화해에서 커다란 평화로 이어질 수 있는 우리의 2000년선언, 우리의 대희년선언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2000년 아침에 이 선언으로 요벨의 나팔을 불어, 노예를 해방하듯 빚문서를 찢어버리듯, 과거의 시대상황이 낳은 모든 과오를 일제히 불문에 부치는 것이 좋겠다. 역사상의 죄는 역사에 기록하되 문죄하지는 말자. 개인끼리도 서로의 원한과 증오를 풀자. 나라끼리는 어제의 적이요 원수이던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한 세기안에 오늘의 동지가 된 20세기가 가고 있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는 나라 안의 동서도 화해해야 할 것이다. 같은 조국 안의 남북의 화해는 곧 세계 평화의 길이 될 것이다.
나라를 새로 일으킬 천년만의 호기가 오고 있다. 마지막 한해동안 유신의 새 세기, 대전환의 새 밀레니엄을 새 선언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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