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일본프로 베끼기부터 없애라
1999/01/08(금) 17:25
김관명 문화과학부기자
6일 저녁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 7층에 입주해 있는 일본민방 TBS서울지국. 기자는 이날 오후7시부터 2시간동안 「행복가족계획」이라는 TBS의 대표적인 오락프로그램을 몇몇 TBS직원과 함께 모니터했다. 우스꽝스런 모습의 리포터가 한 가정을 방문, 가장에게 이런 과제를 냈다. 「30초동안 생계란 3개를 두 손으로 돌리기」. 성공하면 가족이 원하는 자동차 옷장 등 288만엔어치의 선물을 준다. 이어 5일동안 가장의 피나는 연습. 마침내 스튜디오에 출연한 가장은 과제에 성공, 박수를 받았다….
SBS가 매주 월요일 오후7시15분 방송하는 「특명! 아빠의 도전」과 똑같다. 가족이 원하는 선물을 소개하는 첫 장면부터 가정을 찾아가 리포터가 테이블에 앉는 모습, 5일동안의 연습과정을 카메라로 찍는 형식까지. 가족들이 의기양양하게 스튜디오에 뛰어 들어오는 모습까지 똑같은 것을 볼 때면 섬뜩할 정도다. TBS서울지국장 쓰가와 타카후미(津川卓史)씨는 『지난 해 가을 내한한 본사 임직원이 「특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에미상후보에 오를 만큼 국제적으로 유명한 「행복가족계획」을 도용한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TBS는 지난해 프로그램 무단도용에 따른 지적재산권 침해이유로 SBS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 했다가 「항의」차원에서 마무리했다.
국내 방송사의 일본프로 베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기있는 오락프로의 절반 정도는 일본 민방프로를 표절하거나 부분차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사실은 아사히TV 후지TV 니혼TV 등 일본 민방프로 몇 개를 모니터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일본방송시장 개방을 불과 2, 3년 앞두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텐데 표절관행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SBS 「감동 아이러브아이」는 니혼TV 「감동의 베이비린픽」의 복제품이다. 갓난아기들이 스튜디오에 그려진 레인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 아이들의 시선을 빼앗으려고 레인 옆에 설치된 인형 등이 빼닮았다. 93년 방송을 시작한 후지TV 「평성초연담의」는 어렸을 때 헤어진 사람을 찾는 형식, 상황재연, 리포터가 친구를 찾아가는 모습이 KBS2 「TV는 사랑을 싣고」(94년 5월3일 첫방송)의 원조라 할만 하다. 청소년들이 학교옥상에서 자기주장을 펴는 SBS 「기쁜 우리 토요일」의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는 TBS 「학교에 가자」의 「미성년의 주장」코너의 판박이.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만들기」의 두 코너 「고향에서 온 편지」와 「장수퀴즈」는 TBS 「삼마의 헛소동TV」와 흡사하다. 시골노인들이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 장면에서 자막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똑같다. SBS가 자막을 한꺼번에 띄우는 데 비해 TBS는 노래방 기계처럼 한 단어씩 띄우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일본프로 베끼기관행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지적재산권 침해로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크고 국제 프로그램견본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우며 일본방송시장 개방시 시청자들이 쉽게 일본프로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 더욱이 일본방송시장 개방과는 별도로 일본민방 5개사는 2,000억엔씩 출자, 내년부터 공동으로 위성방송을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파라볼라 안테나나 중계유선방송을 통해 일본민방 프로를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선문대 이연(신문방송학)교수는 『국내방송사의 일본프로 표절수준은 일본민방이 제소하면 그대로 패소할 정도다. 외교문제로 비화할까 봐 제소를 안하는 것 뿐이다. 무엇보다 방송사가 스스로 표절관행을 뿌리뽑아야겠지만 방송위원회도 표절심의위와 전문모니터팀을 구성, 표절프로그램 연출자를 중징계하는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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