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99포커스] 6년만에 날개펴는 야구천재 '강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99포커스] 6년만에 날개펴는 야구천재 '강혁'

입력
1999.01.05 00:00
0 0

['99포커스] 6년만에 날개펴는 야구천재 '강혁'

1999/01/04(월) 19:59

날개를 편다. 몇년간을 접어두었던 날개를 드디어 활짝 펼친다.

스물 다섯살의 강혁. 야구에서만큼은 재질을 타고난 그였지만 열아홉살 까까머리 시절 그에게 떨어졌던 천형(天刑)은 한동안 날개짓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겐 그라운드의 환호보다 부러진 날개를 눈물로 추스려야하는 막연한 기다림의 세월이 대신했다. 그리고 99년,마침내 그가 비상(飛翔)한다. 햇수로 꼭 6년만의 찬란한 날개짓이다.

92년. 당시 신일고 3학년이던 강혁은 진로와 관련,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민을 안아야했다. 일찌감치 고교 최대어로 주목받던 그를 한양대와 OB가 붙잡고 늘어졌다.

한양대는 2월 동기생 2명과 그를 묶어 가등록을 해놓은 상태였고 연고구단 OB도 집요했다.

어려운 집안형편이 문제였다. 프로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고 그해 9월 계약금 4,000만원에 OB와 정식 입단계약을 해 한양대를 배신했다. 그러자 한양대와 신일고가 발끈했다.

강혁의 진로에 운명이 달려있던 동기생도 또다른 부담이었다. 결국 입단계약서의 사인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번엔 OB쪽에 등을 보였다.

곧바로 「야구계를 조롱한 문제아」라는 비난과 「영구제명」의 낙인이 그의 등위로 떨어졌다.

잘잘못을 떠나 영구제명의 족쇄는 감당할 수없는 무게였다. 목표가 사라진 강혁에겐 야구대신 방황과 좌절이 어울려보였다.

골퍼로의 전향을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강혁이 있게 한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대로 끝낼수는 없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열심히 해서 최고의 타자가 되자. 그래야만 징계해제도 앞당겨질 것이다』 남들같았다며 일탈이 이어졌을 순간,그는 이를 악물었다.

93년,한양대 입학과 함께 가슴에 단 태극마크를 단후 94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 준우승, 96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준우승, 9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준우승.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마 그라운드에서 강혁은 손이 부르트도록 배트를 휘두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재능을 확인한 대다수 야구팬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더이상 이런 스타를 묵혀둘 수는 없다』 강혁의 영구제명 해제문제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너의 배트와 항상 함께 하겠다』강혁은 지난해 9월 아들의 제명이 풀리는 것을 보지 못한채 한을 안고 세상을 마감한 아버지의 유언을 또렷히 기억한다.

그래서 타석에 서면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고 늘 얘기한다. 아시안게임에서의 화려한 방망이질도 모두 아버지 덕으로 돌린다.

이제 그 배트를 들고 99년 그토록 소망하던 프로그라운드에 선다. 6년의 한을 분출시켜낼 그의 배트에 팬들의 모든 시선이 쏠려있다.

이동훈기자

강혁신상명세

생년월일: 74년8월25일

주 소: 서울 노원구 상계동

출 신 교: 백운초_신일중고_한양대_현대피닉스

가 족: 어머니 주창분(58)씨, 2남1녀 중 막내

체 격: 181㎝,87㎏

존경하는선수: 토니 그윈

99시즌 목표: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