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던 스님이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그러나 굶주린 호랑이는 스님을 잡아 먹으려 한다. 지나가던 소도 「사람들은 짐승에게 죽도록 일만 시키고 고기까지 먹으니 잡아 먹어야 한다」고 거든다.하지만 토끼는 「처음부터 보지 못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어떤 상황이었는지 보여달라」고 한다. 호랑이가 다시 함정에 들어가자 토끼는 재판이 끝났다며 스님에게 가라고 한다』.
99년은 단기 4332년, 기묘년(己卯年) 토끼해. 구전설화에 나오는 토끼는 순하면서도 꾀많고 지혜가 있는 동물이다.
용궁에 갔던 토끼가 목숨을 건져 살아 나오는「별주부전(토끼타령)」은 토끼의 슬기를 보여준다. 반면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속담처럼 겁많고 방정맞고 약한 동물이다.
때문에 지배세력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민중에 자주 비유된다.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보듯 인내력과 끈기가 부족한 점도 있다. 위로만 달아날 줄 알지 되돌아서지 못해 몰이꾼들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 역사기록에 토끼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구려 6대 대조왕 25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면 그해 10월 부여국 사신이 뿔 3개가 달린 흰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고, 대조왕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며 죄수들을 사면했다.
또 같은 책 「열전 김유신」편에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죽게 됐을 때 보장왕의 총신인 선도해가 별주부전으로 넌지시 탈출방식을 알려주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토끼해는 조광조(趙光祖)등 개혁파가 화를 당한 기묘사화(己卯士禍·1519년·중종14년)와 청이 쳐들어온 정묘호란(丁卯胡亂·1627년·인조5년)을 제외하면 문화적·사회적 업적이 두드러졌던 상서로운 해였다.
BC 1122년에 기자조선이 건국했고, BC 18년에 온조왕이 백제를 세워 즉위했다. 기원 후에는 고구려가 247년(동천왕 21년)에 평양성을 쌓았고 427년(장수왕 15년)에 천도했으며 백제도 475년(문주왕 1년)에 웅진으로 천도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는 김대성(金大成)이 불국사를 창건했고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년)에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다.
또 조선시대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동국정운」이 편찬된 1447년(세종 29년), 탕평책이 실시된 1687년(숙종13년),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가 완공된 1867년(고종4년)이 모두 토끼해이다.
1927년에는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를 중심으로 자주독립을 위한 단체 신간회가 조직됐다.
1987년은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을 시발로 6·10항쟁이 벌어져 6·29선언을 이끌어낸 민주화승리의 해였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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