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년을 보내는 노동부 서울 중부노동사무소 산하 종로고용안정센터의 직업상담원 백은형(白銀亨·26·여)씨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백씨의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는 세밑인 30일 오후에도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늦게까지 붐볐다. 대부분 『무엇이라도 좋으니 제발 일거리를 찾아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지닌 구직자들이다.2월초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직후부터 직업상담을 해온 백씨는 매일 꼬박 100명이 넘는 구직자들의 사연을 들어주며 어느때보다 길고 힘든 한해를 보냈다. 10여년 넘게 외국에서 고생하고 왔는데 갈 곳이 없다고 허탈해하는 박사실업자, 정년을 불과 1, 2년 앞두고 명예퇴직한 대기업 간부, 사회 첫발을 내디딜 기회조차 박탈당한 대졸실업자. 이들과의 상담이 쉬울리 없다. 상담과정에서 실직자들은 백씨에게 울분을 토로하면서 엉뚱한 화풀이까지 해댔다.
『대부분 구직자들이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심리적 공황 때문에 고통받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거든요』
특히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대거 쏟아져나온 8, 9월에는 밀려드는 구직자들로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매일 야근을 하는 등 혹독한 고생을 했지만 백씨는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아직 젊은 나이에 진짜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는 백씨는 『특히 일자리를 얻은 분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찾아올때는 가슴 벅찬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백씨의 새해소망은 자신의 실직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제발 내년에는 제가 일자리를 잃어도 좋으니 실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백씨는 우리 사회가 어둡고 긴 터널에서 벗어날 조짐이 보이면 그때가서 경험을 살려 「실직자의 심리치료와 재기에 관한 프로그램」을 주제로 박사공부를 시작할 생각이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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