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IMF구제금융을 받자마자 제일·서울은행 해외매각을 추진한 것은 외자도입과 부실금융기관 정상화, 대외신인도 제고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국내 경제는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고 외자도 꽤 들어왔다. 국가신인도도 투자적격으로 상향조정될 전망이다. 서둘러 싼 값에 팔 이유가 상당 부분 없어졌다.이들 은행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외국자본들이 요구하고 있는 조건들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점포 감축은 물론이고 추가발생 부실에 대한 정부보상은 국민들에게 큰 부담이다. 정부는 이미 각 은행에 1조5,000억원씩을 출자한 상태이고 정부보상을 요구하는 추가발생 부실은 7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돼 10조원 이상 국민세금이 들어간다. 당초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소액주주 처리도 문제가 많다. 정부는 손실분담이라는 차원에서 이들의 지분을 시가 이하로 유상 매수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인적인 피해는 막대하다. 소액주주들은 이미 감자(減資)과정에서 손해를 봐 이중으로 당하는 셈이다. 또 소액주주들이 사라지면 은행 경영에 대한 감시기능이 약해지고, 공개경영이 차단된다. 또 제일은행은 대우 SK그룹의 주거래 은행이어서 재벌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될지도 우려된다.
조기 매각에는 이점이 많다. 대외신인도가 높아져 이자부담이 낮아지면 싸게 팔아서 손해본 액수를 메울 수 있다. 선진금융기법이 도입되고, 보험사등 다른 금융기관의 매각에도 일조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매각자체에 너무 집착하면 당연히 받아야 할 가격보다 싸게 처분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IMF와 내년 1월까지 이들 은행을 매각하기로 합의했으므로 기한을 정해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보다는 제값을 받기 위해 시간을 갖고 협상을 해야 한다. 협상은 밀고 당기게 마련인데, 정부가 너무 저자세이고 카드를 먼저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조속한 완결, 내년부터 본격적인 경기부양책 시행이라는 정부 일정에 너무 쫓겨서는 안된다. 매각은 가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얼마나 부실제거에 노력했는지를 최종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무리한 매각보다는 당분간 정부은행으로 놓아두고 경영정상화에 힘써 가격을 올리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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