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산타클로스가 양말에 선물을 채워준다는 크리스마스 이브. 주부 이영임(李玲林·44·서울 광진구 자양1동)씨는 이날도 옷장속에 깊이 넣어둔 낡은 목양말 한켤레를 꺼냈다.원래의 하늘색이 회색으로 바랜 양말을 만져보며 이씨는 2년전 암 수술에서 깨어날 때를 떠올렸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처음 느낀 감각은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던 추위였다. 『엄마, 추워…』 이씨의 언발에는 어머니가 벗어준 따뜻한 양말이 신겨졌다. 며칠후 이씨는 이 양말을 제손으로 벗고 퇴원할 수 있었다.
1년후 이번에는 어머니가 쓰러졌다. 20년 가까이 건국대부속병원의 상담전도사로 일하며 늘 남에게 베풀기만 했던 어머니는 간장질환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올 1월 중환자실에서 어머니는 『춥구나, 발이 시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놓았다. 이씨는 어머니가 그랬듯 신고있던 양말을 선뜻 벗어 어머니 발에 신겨드렸다. 마침 어머니가 전에 벗어주었던 바로 그 목양말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양말을 되돌려받고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의 염습(殮襲)이 끝나고 유품들이 하나 둘 태워져 재로 남았지만 이씨는 이 양말만은 차마 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아이의 배냇저고리 두벌과 함께 옷장속에 깊이 거두고 가끔씩 꺼내본다.
이씨는 양말을 들여다 볼 때마다 늘 어머니 생각에 무릎이 풀리고 가슴이 저며온다고 했다. 『이제 내가 다시 아프게 되면 누가 체온이 담긴 따뜻한 양말을 벗어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