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김종필(金鍾泌)씨 세 사람이 엮어 낸 3당 합당의 고리는 내각제였다. 합당때는 비밀리에 약속해 알려지지 않았으나 나중에 석연찮은 경로로 공개됐고, 김영삼씨가 이를 빌미로 「민정계의 YS 죽이기」라며 약속을 깨버린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이른바 「내각제 파동」이다.당시 YS가 각서까지 쓴 합의를 파기하면서도 밀리지 않은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정치권이 합의했더라도 국민이 원치않으면 어쩔수 없다』는 논리에 여론이 심정적으로 동조한 덕도 있었다.
「DJP 합의」의 고리도 바로 내각제다. 3당 합당때의 내각제 합의와 크게 다른 것은, 공개적 논의과정을 거쳐 합의하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국민앞에 약속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 승리했으니 깰래야 깰수가 없는 약속이 됐다.
그렇지만 정치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마 「상황론」이니 「정치는 살아 숨쉬는 생물」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대선승리를 기뻐하기도 전에 그의 앞에는 IMF 경제난국이 놓여 있었다. 내각제 논의는 당연히 유보됐고, 국민도 이를 받아들였다.
원래 「DJP 합의」대로 라면 새 정부 출범 직후 내각제개헌추진위를 구성했어야 한다. 올해부터 개헌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자민련이 올 하반기 들어 내각제 논의 채비를 하기 시작한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자민련이 내각제에 점차 열을 올리자 이번엔 국민회의가 『지금이 어느 때냐』고 나섰다. 조심스럽게 오가던 말이 큰 소리로 변해갔다. 급기야는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다른 자리도 아닌, 「정권교체 1주년 기념식」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김대통령은 『약속은 살아 있다』면서도 『그러나 여권내와 여론에 시기조절론도 있다』고 했다. 김총리는 「공동정권의 도덕적 기반은 신의」라고 했다. 서로 맞섰다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김대통령이 여기서 『내가 김총리와 무릎을 맞대고 해결하겠다』고 한 데는 다른 사람은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 담겨 있어 내각제 문제가 당분간 수면하에 잠길 수는 있다. 그러나 속에서 끓는 내홍을 막을 수는 없다. 합의의 당사자 두사람이 아직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새해 국정의 정상 운영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런 조짐은 이미 여러가지로 나타났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자민련이 정부제출 법안중 일부에 제동을 걸고, 양당 국정협의회에서 결론이 난 사안에도 나중에 딴 소리를 하고 나선 것은 내각제를 염두에 둔 「시위」라 할 수 있다. 내각제라는 말만 안나올뿐 「총성없는 전쟁」이 계속될 소지가 충분한 것이다.
공동여당이 이렇게 손발이 안맞으면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내년 초로 예정된 정부조직 개편, 공기업 개혁 등이 어떻게 될 지 뻔하다. 「내각제 약속이 지켜질 것인가, 깨질 것인가」 라는 물음이 이제 호사가들의 관심 차원을 넘어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김대통령이 김총리와 「무릎을 맞대는 회동」이 한시 바삐 열려야 한다. 이 회동이 「당초 합의대로 내년말까지 내각제 개헌을 한다, 안한다」를 담판하는 자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각제 논의를 언제까지 유보하고 그 후에는 어떻게 한다」는 합의는 내놓아야 한다. 이 점을 딱 부러지게 정리해야 공동여당, 특히 자민련이 조용해 진다. 회동이 지체될수록, 정계개편론과도 맞물려 정국이 요동할 지 모른다. 정치에 불확실성이 적어야 국정이 안정되고 국민도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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