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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와 한민족유전자/金重基 연세대의대 외래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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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와 한민족유전자/金重基 연세대의대 외래교수(특별기고)

입력
1998.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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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박세리의 「골프여왕」 등극에 놀란 한 해였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들도 TV앞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특히 일본은 더 놀랐다고 한다. 메이지(明治)유신후 200여년의 골프역사를 가진 일본으로서는 오히려 모멸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일본NHK가 1시간짜리 세리특집을 내보냈고 세계의 언론이 우리의 골프영웅을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국내외 언론이 미처 다루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세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한민족의 유전자다. 부친의 스파르타식 훈련, 공동묘지에서의 담력훈련, 기초체력 등을 세리탄생의 이유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유전적 요인이다.첫째, 우리 민족이 농경문화로 수천년을 이어내려 왔다는 사실이다. 농경문화에서는 손의 섬세함이 여타 신체조건보다도 더 중요하다. 모내기 할 때의 손놀림, 벼타작할 때의 손 움직임, 힘의 분배와 원심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도리깨질 등은 골프스윙의 그것과 유사하다. 골프는 전체적인 체격조건이 좋아야 하고 하체가 튼튼해야 하지만 역시 간발의 차이는 손에서 결정난다. 스윙과 임팩트, 퍼팅때 손의 감각이 스코어를 결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민족의 젓가락문화이다. 젓가락문화가 한민족이 가진 손의 섬세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유로 60,70년대 세계기능올림픽을 휩쓸었고 80년대이후 탁구 양궁 핸드볼 등 스포츠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90년대 들어 박세리와 박찬호를 통해 그 신기(神技)가 발현하고 있다.

셋째, 조선500년동안 유교문화의 그늘에서 억압된 여인들의 한의 문화이다. 칠거지악을 필두로 해서 유교문화는 조선여인들에게 인내의 극한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여인들은 길쌈매고 삼베와 모시를 짜는 등 실내에서 하는 노동을 수없이 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손의 초(超)감각이 개발될 수밖에 없었다. 여행원이 만원권 100장을 정확히 집어내고 호텔주방장이 생선초밥 밥알갱이 수를 거의 일정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넷째로는 「손으로 맛을 내는 문화」다. 세계적으로 손끝으로 맛을 내는 얼토당토않은 이론을 가진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맨손으로 음식을 버무리거나 주물러서 맛을 내는 민족이다. 음식을 먹을 때 손으로 쌈을 싸 먹는 것 또한 우리의 독특한 문화다. 음식을 쌈으로서 맛과 멋, 섭생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 손의 감각이 골프의 감각을 지배한 것이다.

끝으로 퍼지(Fuzzy)이론이다. 골프가 정교하고 과학적인 해석을 해야하는 운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250m전후의 거리에 골프공을 보내야 할 때 컴퓨터로는 계산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그린과 라이의 경사, 풀이 누워 있는 방향, 바람 등 이런 변수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퍼지이론은 컴퓨터의 바로 이런 맹점을 극복하자는 이론이다. 한 마디로 적당히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골프도 이런 모든 변수를 적당히 알아서 해야 하는데 우리 민족은 여기에 매우 익숙하다. 우리에게는 두서너개, 너댓개, 대여섯개 심지어는 두서너대여섯개라는 말까지 있지만 영어에는 고작 a couple of(두개의) several(몇개의) many(많은)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손의 유전자가 타고난 체격, 고강도훈련과 어우러져 박세리를 있게 한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산업 및 스포츠산업이 국가기간산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 스포츠산업의 갈 길은 바로 이 손을 활용하는 데 있다. 세리가 올 한해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듯이 새해에는 더 많은 체육인들이 손의 유전자를 활용해 좋은 결과를 낳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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