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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여성·이웃의 代母/타계한 이태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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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여성·이웃의 代母/타계한 이태영 박사

입력
1998.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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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성변호사/반독재·인권운동 앞장/가정법률상담소 열어 남녀차별제 폐지 주도17일 타계한 이태영(李兌榮)박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이자 여성운동계의 대모로서 법률을 통한 여성인권 향상에 평생을 바쳤다. 1914년 평북 운산(雲山)에서 태어나 1936년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이씨는 46년 4남매의 어머니로 서울대 법대에 첫 여학생으로 입학했다. 5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으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야당정치인 정일형(鄭一亨·82년 작고) 박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법관 임용에 반대, 변호사로 법조계에 투신했다.

이후 불우한 여성들을 만나면서 56년 8월2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인 여성법률상담소를 열었다.

63∼71년 이화여대 교수, 법대학장을 지냈으며 69년 55세때 「한국이혼연구」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3년 가정법원 설치에 핵심 역할을 했으며 76년에는 여성운동의 산실인 여성백인회관을 서울 여의도에 세웠다. 76년에는 유신철폐를 요구하는 명동성당 위장결혼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이씨 평생의 역작. 법률구조에 대한 개념조차 낯선 시절에 탄생, 지금은 국내외 39개의 지부에서 각종 사회교육까지 맡고 있다.

특히 상속시 남녀차별을 폐지하고,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한 89년 가족법 개정이나 올해 동성동본금혼폐지 등은 이 상담소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씨는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자택까지 기증할만큼 애착을 보였던 상담소의 소장직을 95년 맏사위 김흥한(金興漢·76) 변호사에게 넘겨준뒤에는 자서전 집필에 몰두했으나 알츠하이머병의 악화로 중단, 투병해왔다.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71년), 막사이사이상(75년), 유네스코 인권교육상(82년), 국제변호사회 국제법률봉사상(8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90년), 용신봉사상(91년)등을 받았다.<오미환 기자>

◎김 대통령 조화 첫번째 도착

○…84세 일기로 17일 타계한 고 이태영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는 고인을 기리는 각계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최초의 여성변호사로 평생동안 여권신장에 이바지해온 이여사의 영정 앞에는 여성계 인사를 비롯,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찾아와 생전 업적에 경의를 표했다.

○…이날 오후 빈소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가장 먼저 도착해 눈길을 끌었다. 또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와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 조세형(趙世衡)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박상천(朴相千) 법무부장관, 임창렬(林昌烈) 경기도지사 등이 보낸 조화도 보였다.

○…빈소에는 고인의 장남인 정대철(鄭大哲) 국민회의 부총재 등 1남3녀와 사위인 김흥한(金興漢) 변호사, 친척 10여명이 조문객을 맞았다.

또 고인이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직원들도 찾아와 일을 도왔다.<김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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