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聖戰”속 외교해결도 모색/러·중·회교권 등 국제사회 동정여론 유도/제재완화노려 ‘사찰허용’ 카드 제시할 수도『우리는 항상 신과 국가 및 인류의 적들에 대항해왔듯 미국에 저항하고 싸울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승리를 선사할 것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군의 첫 공격이 있은 지 네시간 뒤 가진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결사항전 의지를 이렇게 천명했다.
후세인은 겉으로는 네 곳의 지역 사령부를 중심으로 미국 공격에 대한 즉각적인 군사대응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을 상대로 외교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하고 있는 미국의 공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후세인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무모한 군사적 대응보다는 미국 공격의 부당성과 이라크의 피해 상황을 부각시켜 국제사회 동정 여론을 등에 업고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후세인이 벌써부터 외교채널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등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회교권 국가의 단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또한 이라크정부는 유엔 안보리에 미국의 전쟁도발 중지를 요구하는 한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탄핵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중동 문제 전문가들은 후세인이 그동안 긴장을 고조시킨 뒤 요구사항을 일정부분 얻어 낸 「벼랑끝 외교전술」 을 구사해 온 것처럼, 이번에도 「무기사찰 허용」을 협상 카드로 내밀어 유엔의 경제제재 완화, 국민들의 반정부 감정 무마용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라크의 군사력은 미국에 비해 절대적 열세여서 전쟁 상황이 오래 갈수록 후세인 정권은 불안을 느낄 것이며 피해는 커질 것이다. 또한 경제악화로 인한 국민들의 반후세인 감정이 커져 정권의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점도 후세인은 계산할 것으로 보인다.<배국남 기자>배국남>
◎美이라크 적대史/이라크,쿠웨이트 침공으로 91년 걸프전 발발/93년이후 5차례 공습단행
미국과 이라크의 군사적 대결은 늘 아슬아슬했다. 공습 직전까지 가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다 협상이 타결된 적도 있고, 미국이 사전 경고 없이 전격적으로 공습하기도 했다. 두 나라의 군사적 충돌은 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원유쿼터 위반」을 이유로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 시작이다. 이라크는 침공 6시간만에 수도 쿠웨이트시티를 장악했지만 미국은 즉각 경제제재 조치에 착수했다.
91년 1월에는 「사막의 폭풍」작전을 개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과 이라크군간의 걸프전이 발발했다. 지상군 투입 하룻만에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 걸프전은 91년 2월 종전됐다.
이후 미국은 후세인을 응징하기 위해 이번까지 다섯번이나 이라크를 공습하거나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93년 1월에는 이라크의 종전결의안 위반을 이유로 185대의 전폭기를 동원을 감행했고 40기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93년 6월과 9월에는 부시 전대통령에 대한 암살음모와 쿠르드족 거점에 대한 이라크군의 점령을 응징하기 위해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지난 달에는 이라크가 일방적으로 무기사찰을 거부하자 다국적군이 대규모 공격을 준비했다 이라크가 굴복하자 클린턴은 H아워 30분 전에 공격명령을 취소했다.<김정곤 기자>김정곤>
◎이라크사태 일지
90.8.2 이라크군 쿠웨이트 전격 침공
90.8.6 유엔, 대이라크 무역제재 조치 결정
91.1.16 걸프전 발발
91.2.28 미국,걸프전 종전 선언
93.1.14 미국,유엔 결의안 위반 이유로 공습
93.6.26 미국,부시 암살음모 응징 위해 미사일 공격
95.8.20 이라크,유엔에 무기자료 제출 등 사찰 허용
96.9.3 미국,이라크의 쿠르드족 침공 응징 폭격
98.6.30 미 폭격기,비행금지구역 순찰도중 미사일 기지 폭격
98.10.31 이라크,무기사찰 거부
98.11.14 미국,응징 태세. 이라크,무기사찰 재개 발표
98.11.15 클린턴, 군사공격 명령 취소
98.12.16 미 이라크 전격 공습
◎루빈아만포 부부/대변인 남편은 공습 브리핑/종군기자 아내는 공습 생중계
미국의 대이라크 공습을 바그다드에서 처음으로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한 사람은 CNN의 아만포 기자다. 같은 시간 워싱턴의 국무부 브리핑룸에는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이 이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다.
『총성이 있는 곳에 아만포가 있다』 91년 걸프전의 영웅은 군인이 아니라 CNN의 피터 아네트 기자였다. 지금 그의 자리에는 크리스티안 아만포(39)가 대신 앉아 있다.
83년 CNN에 입사한 아만포는 보스니아 르완다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알제리 등 분쟁의 현장을 누벼왔다. 90년대 최고의 여자 종군기자로 명성을 쌓은 그는 올 여름 제임스 루빈과 결혼해 실제로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란에서 성장하고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한 특이한 경력이 어느 나라에서든 친화력을 갖고 취재할 수 있는 무기다.
15일 유엔 사찰단이 바레인으로 철수하자 미국의 공격임박을 감지한 아만포는 15시간동안 사막을 달려 바그다드로 들어갔고 이라크 공보처 지붕에서 공습 개시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그는 『참호 속에 있지 않고서는 전쟁의 진실을 알 수 없고 전장에서 기자의 도덕적 책무를 깨달았다』고 종군기자론을 밝힌 바 있다.<신윤석 기자>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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