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솜털 입은 겨울눈속엔 내년 피울 꽃망울 이미 형성생물의 종족보존본능은 알아줘야 한다. 세균에서 사람까지 번식이라는 것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지 않은가. 식물은 꽃이라는 생식기관을 만들어 씨를 퍼뜨린다. 풀들은 씨앗이나 뿌리를 땅에 박고 월동하지만 나무들은 줄기 끝에 겨울눈을 달고 있다가 다음해 봄 잎이나 꽃을 피운다. 겨울눈을 잘 관찰해 보면 통통하고 커다란 꽃눈이 있는가 하면 길쭉하고 자그마한 잎눈이 있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여러 겹의 비늘잎을 둘러쓰고 있는가 하면 보드라운 솜털옷을 입고 있는 것, 끈적거리는 점액을 뒤집어 쓴 것도 있다.
그런데 하나 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으니 내년 초봄에 피울 꽃망울을 이미 올해 여름과 가을에 만들어 달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진달래 산철쭉 동백 산수유 목련 배 복숭아 자두나무의 가지를 눈 대고 가까이 들여다 보기 바란다. 개중의 하나를 따서 비늘잎을 벗겨 보거나 잘 드는 면도날로 중간을 잘라 보면 놀랍게도 거기에는 「술이며 꽃잎까지 다 들어 있는 완연한 꽃송이 하나가 그대로 있다.
봄이 오면 잎사귀도 나기 전에 화봉(花峰)을 틔울 아기꽃이 아닌가. 혹독한 겨울의 냉기를 참고 있는 것이요, 차디찬 겨울을 머금었기에 봄꽃내음이 짙고 색깔도 그렇게 고운 것이리라.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어렵사리 살아온 사람들에서 사람의 향기가 풍기는 것도 같은 원리다.
그런데 이 나무들도 근친교배는 질 나쁜 자손을 남긴다는 것을 알기에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피하고 꽃분을 다른 나무에서 받자고 반드시 벌 나비가 나올 때라야 꽃을 피운다. 곰익은 꽃잎은 떨어져도 꽃맺이를 하기에 낙화가 서러운 것이 아니다. 다음 해에 피울 꽃망울을 미리 만들어 두는 준비성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강원대 생물학과 교수>강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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