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빨라졌던 서울시내의 차량 주행속도가 다시 느려지고 있다. 한정된 도로망에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막히는 도로. 과연 우리는 이 교통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인내만으로 버티어야 할까. 도로를 시원하게 뚫는 것이 일차적인 답이다. 하지만 이는 여러가지 제약으로 말처럼 쉽지 않다.현재의 여러 악조건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중 하나는 기존의 도로망이 인체의 자율신경계처럼 교통량에 따라 움직여 주는 것이다. 지난달 12일부터 닷새동안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세계지능형교통시스템(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s)대회는 이 대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세계 50개국의 교통전문가들과 85개 기업체들이 21세기를 대비해 첨단교통수단과 교통체계를 내놓고 서로 토론하며 고민했다. 선진국들의 기업체 및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자동항법장치나 추돌방지시스템, 차선이탈방지장치 등이 갖춰진 첨단차량들을 출품했고 전문가들은 신(新)신호시스템 등 770여편의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 앞으로의 교통관련 산업추세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ITS란 사람이 아닌 전자, 정보통신, 제어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교통지체를 해소하는 지능형 교통시스템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 이미 실용화한 추돌방지시스템이 전 차량에 갖춰져 있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차량간 유지해야 하는 100m의 거리를 10m로 줄일 수 있게 된다. 같은 도로에 10배 가까운 차량을 소통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자동항법장치가 있다면 교통정체구간, 최단거리 등을 미리 파악, 목적지에 이르는 시간을 최소로 단축할 수 있게 된다. 차선이탈방지장치는 사고를 예방해 준다. 최종적으로 무인운전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이같은 첨단교통체계는 한 마디로 소리없는 혁명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안타깝게도 세계추세와는 동떨어져 있다. 출발부터 20년가량 뒤져 있음에도 교통체계 개선에 관한 어떠한 협의체도 마련돼 있지 않다. 한 기업이 첨단제품을 실용화하려 해도 도로는 건설교통부, 자동차는 산업자원부, 기기는 정보통신부, 교통량 협조는 경찰청 등과 협의해야 한다. 국내의 고급사양 승용차에도 자동항법장치가 갖춰져 있지만 교통량 정보가 없어 반쪽기능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진국은 물론, 대만까지도 ITS협의체를 구성해 민관학이 유기적으로 운영중인데 우리의 기존 체계로는 이들을 따라잡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지경이다.
ITS를 효율적으로 도입하면 도로확장 없이도 기존도로의 용량을 절반이상 높일 수 있고 교통지체로 인한 손실도 연간 5조원가량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교통사고를 60%이상 줄일 수 있어 귀중한 인명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자통신 등 국내 첨단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되고 이에 따른 수출잠재력도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ITS 분야의 연구사업이나 표준화사업, 기술개발이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 도로교통, 자동차, 전자통신 등 관련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ITS 추진협의체 구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다.
다행스러운 것은 늦게나마 정부가 올해 지능형 교통체계에 관한 국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교통효율화법안을 국회에 상정, ITS지원책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제 산업계, 학계, 연구단체 및 정부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ITS추진협의체(가칭 ITSKOREA)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출발은 늦었지만 자동차, 전자통신 분야의 기술이 선진국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연구개발만 이뤄진다면 기술격차는 금세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IMF사태로 정부의 신규사업들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지만 ITS사업은 더이상 미룰 성질의 사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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