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로 한국문학 빛내고 혼의 나라로…/17년간 대하 장편소설 집필/한민족의 삶 예술로 복원/문학사에 큰 족적 남겨『일필휘지(一筆揮之)를 믿지 않는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다』
11일 세상을 떠난 소설가 최명희씨의 삶과 문학은 그가 남긴 이 말에 담겨 있다. 그는 뼈를 깎고 살을 바르는 듯한 혼신의 자세로 「혼불」을 썼다. 등단 초기 단편소설 몇 편을 쓴 것 외에 17년동안 「혼불」에 전념했다. 이 소설에 「대하예술소설」이라는 수식이 붙는 이유는, 가느다란 명주실로 거대한 벽화를 그리듯 한 시대 한국인의 삶을 예술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 보성여고 교사로 재직하던 최씨는 80년4월 「혼불」의 첫 장을 썼다. 일제시대인 1930년대 이후 해방까지 전북 남원의 매안이씨 가문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일으키려는 종부(宗婦) 3대(청암부인, 율촌댁, 효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의 수탈과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양반사회의 기품을 지키려는 주인공들의 노력, 그 한편으로 평민·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럽게 살면서도 민족혼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쳤던 민중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요즘 감각으로는 따라 읽기도 힘들 만큼 꼼꼼한 문체로, 보석처럼 숨겨진 우리말을 찾아내 전래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와 관제(官制)등을 기록한 소설은 생생한 한국학·민속학자료이다.
96년12월 「혼불」이 5부 전10권으로 완간된 후 문화예술계는 물론 한승헌(韓勝憲) 감사원장, 고건(高建) 서울시장, 강원룡(姜元龍) 크리스챤아카데미이사장등 각계인사 100여명이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94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는 최씨의 초청강연 「나의 혼, 나의 문학」을 고급한국어 교재로 채택했다.
최씨는 해방 이후 5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혼불」6부의 집필을 계속하려 했지만 끝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5부를 집필중이던 96년8월 발병한뒤 97년1월부터 병세가 악화했다. 그는 가족과 몇몇 지인 외에는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은채 외롭게 투병해왔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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