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훈훈하게 가슴적시네 ‘그림편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훈훈하게 가슴적시네 ‘그림편지’

입력
1998.12.10 00:00
0 0

◎인사 치레로… 사무침으로…/유명화가 내면 담은 60여점/그로리치화랑 20일까지 전시「굴뚝통 소제하시령 반민족 악당들의 대갈통도 심통도 깨 치 소제하시령」. 사상범으로 두 번 투옥됐던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는 중앙정보부등 국가권력에 대한 울분을 삭이지 못해 86년 굴뚝청소원을 그리고 편지에 이런 글을 적었다. 「말이 달리니 산협(山峽) 시끄럽고 네굽 또드락 소리 내 마산(馬山)에 간다」 피란시절 부산에 살던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는 파리 유학시절부터 인연맺은 선배 설초 이종우(雪蕉 李鍾禹)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고 마산으로 그를 찾았다.

사연도 많고, 보는 맛도 색다른 작가들의 그림편지 6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그로리치화랑. (02)720­5907

심심파적으로, 인사치레로, 절절한 사무침으로 그리고 쓴 편지는 작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전시작품에는 계절 인사편지가 가장 많다. 말 뱀등 주제동물을 넣어 그린 변종하씨나 「조광(朝光)」이라는 글자를 적고 새해 떠오르는 해를 그린 고암의 연하장이 대표적인 경우. 「홍매화가 피었으니 술 한 잔」하자는 홍석창씨의 편지도 정감이 있다.

「인생의 길 가고 가도 한없는 그 곳이 어데인고 그래도 달여야 하는 인생 행로」. 북에 아내를 두고 온 최영림씨가 59년 유경채씨의 소개로 재혼을 결심했을 때 쓴 편지이다. 숲속에 있는 아들을 추상으로 그린 이응노씨의 작품은 북의 아들 문세(文世)에게 보내려고 그린, 그러나 부치지 못한 편지이다.

양화가 홍종명씨가 먹으로 풍경을 그린 편지는 느낌이 부드럽다. 파리에서 산 엽서에 가필을 한 이항성씨나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무덤을 방문해 그림을 그리고 「훗날 명작 중의 명작이 될 것」이라고 쓴 운보 김기창씨의 편지도 익살맞다. 한국에서는 작품이 안 팔렸던 박수근씨가 미국인컬렉터들에게 보낸 성탄카드에는 「Wih you and the family merry christmas…」라고 적혀 있다. 초등학교졸의 화가가 「그린」영어가 재미있다.

자화상이나 편지등 「사이드 워크」는 외국에서는 주요 컬렉션대상.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질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사이드 워크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화랑대표 조희영씨가 『발품으로 만든 전시』라고 할 정도로 여러 곳을 수소문해 마련한 전시이다.<박은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