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경제통합 넘는 美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亞 금융 파급영향 검토할때유럽의 단일화폐가 새해1월1일 역사적인 출범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학 교수들은 유럽의 단일통화통합을 그저 단편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만 이해한다. 예컨대 환거래비용 절감효과가 얼마니, 역내기업들의 경쟁력 제고효과가 얼마니 하는 식으로만 이해한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정책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는 유러화의 등장에 대한 미국의 대외전략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전략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유러화체제의 출범은 지난 45년간 유럽이 추진해온 경제적 통합의 종착점이요, 나아가서는 유럽의 패권지향을 의미하는 정치적 통합의 출발점이다」. 경제적 실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중대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요컨대 유러화체제는 지금까지 팍스아메리카나의 구도하에서 단일패권의 지위를 누려온 달러화에 대한 명백한 통화전쟁의 선전포고이며, 나아가서는 유럽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산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안보·군사노선을 채택할 것이라는 신호탄이다.
20세기의 마감이 목전에 임박한 오늘날 전세계 초강국들은 새로운 이념을 내걸고 각기 국가전략의 기획안을 은밀하게 노출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 자신있게 경쟁할 수 있는 금융산업에서의 글로벌 기반확대를 위해 자본자유화를 강행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외환금융위기로 인해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있음에도 미국은 투기자본의 폐해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자본규제책의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의 전임 콜 총리는 통일은 과거의 청산이고 유럽통합은 미래의 지향임을 앞서 선언했고, 신임 슈뢰더 총리는 스스로 전후세대임을 자처하면서 1차대전 종전 80주년 기념식 참석을 거부했다. 지난 1년간 낮은 포복자세로 서방의 압력을 받아왔던 일본은 9월이후 달러의 약세화를 틈타 아시아 금융리더십의 확보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아직 일본과 맞서 아시아의 패권다툼을 벌일 실력은 없지만 위안화의 절하를 의연하게 자제함으로써 맏형으로서의 자질과 의지가 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실로 세기말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정치 경제구도 변화는 심상치 않다. 새로운 천년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전후체제의 종식이 역사적 수순을 밟고 있음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여기서 전후 체제의 종식이란 구공산권의 붕괴로 이미 절반은 실현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국제적 지위확대라는 과제로서 남아 있다.
어찌됐건 세계는 전후 미국과 달러에 의한 일극지배체제로부터 분할지배 체제로 서서히 변화해 갈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실물경제 규모에 있어 미국을 상회하므로 유러화통합을 계기로 금융경제면에서도 상응한 대우를 받고자 할 것이다. 최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에서 속속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함에 따라 유러화의 좌초를 점치는 자, 혹은 이를 희망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유러화의 통합은 이미 결정적인 고비를 넘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미참가국인 영국도 결국에는 유럽의 일원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며, 토니 블레어가 외치는 제3의 길도 어찌보면 좌파정권의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유럽통합이라는 시장논리를 수용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이다.
그러면 유러화의 통합은 아시아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간 실물경제 일변도로 서방을 추종해온 전략이 외환금융위기로 그 한계를 명확히 노출했다면 아시아는 금융경제 측면에서 자주적인 대응책을 도출해내야 한다.
아직 중국의 위안화가 국제통화로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당분간 엔화의 리더십을 인정해야 할런지도 모르며, 일본 손들어주기의 역할은 일본으로 인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른 한국의 몫일수도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