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비병은 노동당작전부소속 ‘적공조’/2월 北 장교 귀순후 “보복하겠다” 위협/김 중사 포섭 김 중위 살해 사주 가능성최전방의 한국군장병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면서 북한군과 접촉, 포섭에 걸려든 사건이 발생해 또다시 충격을 주고있다. 또 사인을 놓고 의혹이 제기돼온 지난 2월24일 김훈(金勳·25·육사52기)중위의 사망이 어떤 형태로든 이번 사건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아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상황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8일 군 수사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의 유엔사 경비대대소속 김모(28)중사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측 경비병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선물까지 받아 챙긴 것은 지난해 7∼12월. 숨진 김중위는 올해 1월 김중사가 부소대장으로 있는 소대에 부임했다.
국회 국방위 「김훈중위 사망 진상파악 소위원회」와 김중위의 유족들은 당시 김중사가 북한군에게 완전히 포섭돼 적극적인 이적행위를 했으며 이것이 김중위의 사인과 직접 연결됐을 것으로 보고있다. 군 수사당국은 일단 부인했으나 김중사가 스스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초소를 찾아가기까지 한 것은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국방부의 한 심리전 전문가는 『김중사 등이 접촉한 북한경비병들은 노동당 작전부소속 「적공조」 요원으로 관련학문을 전공하고 장기간에 걸쳐 특수훈련을 받은 심리전 전문가』라며 『이들이 한번 표적을 삼으면 아무리 반공의식이 투철해도 걸려들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족과 국회 소위는 김중사 등의 엄청난 이적행위를 알게 된 김중위가 이를 강력히 제지, 질책하거나 문제삼으려다 「사고」가 발생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유족 등은 특히 올해 2월 「적공조」 요원인 북한군상위 변용관(26)씨가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직후 김중위가 숨졌다는 점을 들어 북한측의 사주가능성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유족들이 만난 한 소대원은 『변씨의 귀순으로 살벌한 분위기속에서도 김중사가 2월16일께 북한측에 넘어갔다 왔으며 일주일뒤 김중위가 숨졌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경비부대에는 『북한측이 변씨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있었다는 것이다. 국회 소위와 유족측은 이와 함께 김중위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권총도 김중사 것일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자살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군 수사 관계자도 그 동기에 대해서는 『부대원들이 평소 북한군을 대수롭지 않게 만나는 등 군기문란행위를 알게 된 김중위가 이를 심각하게 고민하다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어떤 방향이든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는 불가피하게 됐다.
한편 이 사건은 최근의 미사일 오발이나 조명탄 민가낙하사건 등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군의 기강이 극도로 무너져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 등에서도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될 전망이다.<정덕상·김병찬 기자>정덕상·김병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반경 400m 54년부터 쌍방공동경비
판문점 군사분계선상에 세워진 회담장을 축으로 한 반경 400m의 원형지대로 54년 유엔사와 북한측의 협정에 따라 쌍방이 공동경비를 하고 있다.
76년까지 이 지역은 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아 양측 경비병과 기자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 이때문에 59년 1월에는 구(舊)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주재기자 이동준(李東濬)씨가 이곳에서 우리측으로 망명했으며 67년 3월에는 이수근(李穗根)도 여기서 위장귀순해왔다. 그러나 76년 8월18일 북측의 도끼만행사건이후 양측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점선과 흰색팻말로 군사분계선을 표시, 서로가 일체 이를 넘지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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