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망년회 철인가. 그런데 전화가 안 울린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그래도 그냥 넘길 수 있나』며 몇 통은 왔는데. IMF 체감지수가 확실히 지난 해와 다르긴 다른가 보다.춥다. 마음만 추운 게 아니다. 주변엔 웬 독감 환자가 그리 많은지. 국제부 기자들도 밤새워 야근하다 감기에 걸려 결근하는 일까지 생겼다. 「IMF 감기」라고 하든가.
추워도 신문사의 섣달은 바쁘다. 송년 특집을 준비하랴, 신년 특집을 짜랴, 한 해를 정리하고 한 해를 전망하는 작업이 동시에 벌어진다. 한 해를 마감하는 기획 중 매년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국내외 10대 뉴스다.
과거를 보면 현재가, 현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했든가? 작년 스크랩을 펼쳐 보았다. 먼저 국내 10대 뉴스. 역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IMF 구제금융이 머리에 올라 있다. 대기업 연쇄부도, KAL기 괌추락 참사, 한보사태와 김현철씨 구속,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 등이 눈에 들어 온다.
해외 10대 뉴스. 덩샤오핑(鄧小平) 사망과 장쩌민(江澤民)주석 집권, 아시아 금융위기 강타, 테레사 수녀·다이애나비 타계, 홍콩 반환, 복제양 돌리 탄생, 영국과 프랑스의 좌파 집권, 엘니뇨와 환경재앙 등이 뽑혔다.
올해의 10대 뉴스를 정리하기 위해 한 해를 돌이켜 본다. 올해도 무척 바쁜 한 해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생각이 꽉 막힌다. 국내 뉴스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휴전선을 넘어 소떼도 갔고 사람들도 갔다. 총풍도, 사정 바람도 예외없이 불었다. 굿뉴스를 찾는다면 아마도 박세리 신화 정도.
하지만 올해의 주어(主語)는 역시 고통과 개혁일 것이다. 쫓겨나고 죽고 사라지고 합치고 찢어지고 해체된 인간과 기업들의 드라마 만큼 우리를 놀라게, 가슴 저리게 한 것이 있었는가? 지난 해 10대 뉴스를 선정하면서 우리는 올해의 우울한 10대 뉴스를 충분히 예감했을 터다.
현재가 과거의 거울이라면 스크랩을 한 장 더 뒤로 넘겨보자. 지지난해 국내 10대 뉴스. 가장 큰 뉴스가 두 전직 대통령 법정 단죄였다. 그 옆에 경기 침체·명예퇴직 신드롬이 뽑혀 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제위상 강화란 뉴스도 눈에 띈다. 선진국 클럽에 가입했다고 떠드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선 경기가 고개를 숙이며 명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년 후 닥쳐 온 IMF의 전주곡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해 IMF 구제금융은 올해 고통과 개혁의 서막이 된 셈이다.
세계라고 다르겠는가? 지난 해 해외 10대 뉴스 중 하나인 아시아 금융 위기. 올해 톱뉴스가 분명한 지구촌 경제 위기의 단초였다. 태국에서 시작한 아시아발 위기는 세계를 한 바퀴 돌아 러시아로, 남미로 확산됐다. 내년에는 미국의 경제 위기가 10대 뉴스를 장식할른 지도 모른다.
97년 프랑스와 영국의 좌파 집권은 올해 콜 총리의 16년 장기집권을 무너뜨린 독일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비건설적인 일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울분을 삭이거나 후회해봤자 다 소용없는 짓이다. 신문사가 선정 발표하는 10대 뉴스도 단순히 역사를 기록으로 정리하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로 끝난다면 다를 바 없다.
올해는 10대 뉴스를 보며 미래를 예감하고 준비하자. 꼭 10대 뉴스가 아니라도 좋다. 오늘을 보면 내일이 보인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행간에 숨어 있는 내년의 10대 뉴스를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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