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출판대국” 속은 “고사직전”/출판사 46년 150개서 97년 1만3,116개로/주먹구구 유통구조·시장개방 “위기감”/“지사적 역할 살려 새출발” 목소리 커져한국출판 반세기를 되돌아 보자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첫번째는 우리출판계의 외형적 모습과 내면적 상황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97년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사는 1만3,116개사, 발행종수는 2만7,313종에 이른다. 통계가 처음으로 잡힌 46년의 150개 출판사 발행종수 1,000종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이 수치만으로 보면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출판대국이다.
그러나 우리 출판계의 내면은 암울하다. IMF체제 아래서 더욱 허덕이고 있는 출판계는 좋은 책을 만들고 보급하기 힘든 사회적 여건과 시스템 속에서 『고사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아우성이다. 수십년간 부르짖어 온 주먹구구식 출판유통구조의 개선과 책에 대한 정부의 미약한 인식의 전환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 출판인은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장사꾼처럼 천박한 출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숨을 쉬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현실인데 내년부터는 출판시장이 외국에 전면 개방된다. 건국 50년을 맞은 우리 출판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다.
두번째는 우리나라 출판만이 갖는 독특한 지사적 역할이다. 우리 출판은 일제치하의 암흑기에도 횃불의 역할을 했다. 그 역할은 해방이후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계속됐다. 출판인들은 해방 이후 정부수립 직전까지를 우리 출판의 춘추전국시대요 르네상스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의 출판사들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빼앗겼던 말과 글을 되찾은 기쁨과 열기, 열정을 바탕으로 우리 글로 된 책들을 마음껏 쏟아냈다. 암울한 권위주의 독재체제였던 70∼80년대는 역설적이지만 우리 출판계의 제2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서슬이 퍼렇던 시절, 아무도 바른 소리를 입밖에 낼 수 없었던 그 시절, 출판은 책을 통해 대중을 의식화시켰고 민주화에 기여했다. 조상호(趙相浩) 나남출판사 대표는 박사논문 「한국출판의 언론적 기능과 시대적 역할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의 사회비판적 출판은 권위주의시절 비판적 담론을 형성하고 대중이 민주화의 절박성을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한국출판이 기획성과 전문성, 학술성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이때 활약한 출판사들은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한길사 까치 백제 청람문화사 평민사 일월서각 형성사 돌베게 두레 광민사(동녘의 전신) 풀빛 한울 이론과실천 이삭(산하의 전신) 거름 학민사 청사 석탑 이성과현실(자작나무의 전신) 지양사 아침 백산서당 세계 녹두 사계절 기사연출판부 청년사 공동체 한마당 등이다. 소위 사회과학서적 출판사라고 불리웠던 이들 출판사는 모진 고초와 제약 속에서도 책을 통해 민주와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학생과 지식인, 대중은 이 책들을 탐독하며 결국 민주와 자유를 쟁취했다. 그러나 이같은 출판전통은 자유화 이후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단행본 출판사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金彦鎬)가 출범한 것은 시사적이다. 김혜경(金惠景) 푸른숲 대표는 『출판인회의는 어려운 시절 치열했던 출판인들의 정신을 회복하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열악한 출판현실과 그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의지로 탄생했다』고 말했다. 건국 50년만을 맞아 재개하는 새로운 출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김경희(金京熙) 지식산업사 대표는 『현재 우리 출판이 처한 현실은 식민지지배와 분단, 권위주의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주요 원인』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출판전통과 말글을 사랑하는 민족성이 남아 있는한 출판의 장래는 밝다』고 말했다.<김철훈 기자>김철훈>
◎문제소설 화제소설/최인훈 ‘광장’분단 현대사 비극그린 상징작/최인호 ‘별들의 고향’산업화과정 인간소외 표현/조정래 ‘태백산맥’80년대 화두 이데올로기 다뤄/이문열 ‘변경’“20세기 마지막 대하소설” 별칭
문학의 본질이 일체의 비인간적 억압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라면 전쟁, 쿠데타, 독재, 산업화와 이념분쟁으로 인한 인간소외로 굴곡진 우리 현대사는 그대로 문학에 그 족적을 남겼다. 소설부문의 문제작과 화제작을 통해 그를 훑어보자.
최인훈의 「광장」(60년)까지 우리 소설의 주제는 분단과 전쟁이었다. 6·25는 해방 전부터 활동해온 김동리 황순원과 서기원 장용학 손창섭 선우휘등의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문학을 낳았다. 삶과 죽음의 원초적 문제는 작가들을 실존주의에 경도하게 만들어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58년)를 낳았고, 손창섭의 소설처럼 「잉여인간」(58년)적 의식에 함몰시켰다. 4·19가 낳은 소설 「광장」은 작가의 말처럼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보여준 작품. 그러나 남도 북도 선택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바다에 목숨을 던지는 주인공 이명준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 분단의 현실을 상징한다.
60년대초 김승옥의 등장은 5·16 이후 막 산업화가 시작된 시절과 맞물린다. 김승옥은 그의 초기 단편들, 특히 「무진기행」(64년)에서 소설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안개처럼 모호한 당시의 시대상과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명료하게 그려내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 60년대는 김씨를 비롯해 이청준 최일남 등으로 대표되는 한글세대가 비로소 한국문학의 중심으로 들어온 시대이기도 했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72년)은 60년대 이후 계속된 파행적 산업화에 의한 인간소외를 다루며 사실상 한국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그의 소설은 이른바 「대중문학」논쟁을 낳았다. 최씨의 소설이 도시문학이라면 이문구의 「관촌수필」(72년)은 도시화·산업화로 피폐해가던 농촌현실을 극명하게 그린 연작소설이다. 황석영의 창작집 「객지」(74년)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76년)은 산업화의 음지에서 소외된 인간군상의 현실을 서정적으로 그린 대표작들. 이들과 함께 김주영 박완서 조해일 조선작 한수산 윤흥길 등 70년대 작가들은 한국소설을 풍성하게 개화시켰다.
5공정권이 들어선 후 80년대 한국문학의 주제는 이데올로기였다. 조정래의 장편 「태백산맥」(86년)은 이런 시대분위기를 타고 지금까지 450만권 이상이나 팔려나간 대표적 소설이다. 대하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우리 문학의 큰 흐름이 되는 긴 장편은 박경리의 「토지」가 정점을 이룬다. 작가가 69년부터 25년동안 쓴 「토지」는 동학 이후의 근현대사를 소설화했다. 「사람의 아들」(79년)로 80년대를 연 이문열이 최근 완간한 「변경」을 두고 「20세기 마지막 대하소설」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90년대말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긴 작품들이 쓰여질 수 없는 시대상황이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하종오 기자>하종오>
◎해방이후 베스트셀러(1945∼1997)
대한출판문화협회는 건국 이후 50년동안의 베스트셀러를 종합·정리했다.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소설등 문학류이며 2년 연속 베스트셀러로 꼽힌 것도 있다.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을 모은 것 이므로 전체 판매량이 많은데도 표에는 들어 있지 않은 책도 많다. 출판문화협회는 서점 판매량과 양평(梁平)의 「베스트셀러이야기」(우석), 「한국출판연감」등을 참고해 목록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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