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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 반환/이병일 수석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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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 반환/이병일 수석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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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히틀러는 젊은 시절 빈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려다 두번이나 실패했을만큼 미술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린츠에 유럽최대의 미술관을 건립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같은 그의 미술에 대한 집착은 2차대전중 각국에서 조직적인 미술품 약탈로 이어졌다. 나치독일은 선전포고 전에 작성해 두었던 목록에 따라 군사작전을 하듯 유대인컬렉션을 중심으로 약탈을 자행했다.■그의 미술품 약탈작전에 앞장선 것이 바로 특무기관인 로젠베르그(ERR)였다. ERR의 기록에 따르면 무려 2만9,903점의 미술품이 현재의 파리 현대미술관에 보관됐다가 독일로 이송됐다. 40년 10월부터 44년 7월까지 프랑스에서 독일로 빠져나간 미술품은 화차 137량에 4,074상자에 이르렀다고 하니 나치독일이 얼마나 미술품 약탈에 혈안이 됐던 가를 알 수 있다. 이중 상당수는 전쟁이 끝난 후 반환됐지만.

■전쟁과 침략엔 약탈이 따르게 마련이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약탈의 주요 대상은 식량과 금 은 및 보석류였다. 이것이 18세기 후반부터는 미술품과 문화재 약탈로 바뀌었다. 이는 유럽의 주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완성되고, 여기에 미술품이 전시되기 시작했던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식민지 개척과 침략에 나선 강대국들은 세계 도처에서 당연한 일처럼 미술품 약탈을 감행했다. 한국도 큰 피해국의 하나다.

■2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나치의 유대인학살 관련 국제회의에서는 나치약탈 예술품 반환에 대한 협의를 하고 11개 항목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각 박물관과 미술관은 약탈관련 소장품의 정보를 공개하고 소유권 반환 요구에 신속히 대응키로 했다. 이로써 나치약탈 미술품은 원주인에게 돌아갈 길이 열린 셈이지만 우리가 일본에 빼앗긴 2만9,000점의 문화재는 언제나 돌아올는지. 일본은 문화재반환을 약속하고도 지금까지 겨우 1,665점을 돌려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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