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장·복지시설 전달4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동 대원여고(교장 손상호·孫尙鎬) 앞길. 단정한 교복 차림의 3학년생 모두가 양손에 책가방 대신 절인 배추 한 포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었다.
수능시험도 끝낸 고3 8개반 650여명 학생은 이날 수업 대신 불우이웃을 위한 「사랑의 김치담그기」 행사를 열었다. 오전 9시 행사가 시작되자 조용하던 학교는 금방 젓갈 냄새와 해맑은 웃음소리에 휩싸였다. 서투른 손놀림에 교실바닥은 이내 시뻘건 김치국물로 얼룩졌다. 성급한 학생들은 김장은 제쳐두고 김치속을 반찬 삼아 이른 점심을 먹기도 했다.
고교장추천으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에 합격한 박하나(17)양은 『생전 처음 담가본 김치인데 의외로 「진짜 김치맛」이 나서 신기하다』며 『앞으로는 김치찌개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활짝 웃었다.
학생들과 어울려 김치를 담그던 최윤상(崔崙相·39) 교사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자칫 허탈감에 빠질 수 있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여가활동이 됐다』며 『나도 새삼 아내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오의 품평회 때는 기름이 번지르르한 「참기름김치」, 고추장 대신 된장을 쓴 「막장김치」 등 기발한 김치들도 대거 출품돼 심사를 맡은 교사들을 포복절도하게 했다. 학생들이 담근 420포기의 김치들은 교내 불우학우와 송파구 거여동 신아재활원 등 2곳의 사회봉사시설에 전달됐다.
지난해말 부모가 사업 실패로 집을 나간 뒤 소녀가장으로 억척스럽게 가정을 꾸려온 3학년 S(18)양은 친구들이 담가준 30포기 김치를 선물받고 『요즘은 허리가 아파 초등학생 남동생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며 『오늘 모처럼 근사한 저녁식사를 차려줄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이주훈 기자>이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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