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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IMF 서명 1년­뒤돌아본 재협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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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IMF 서명 1년­뒤돌아본 재협상론

입력
1998.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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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 처방 침묵한채 ‘재협상論’ 뭇매/대선바람 휩쓸려 ‘재협상’ 논의조차 비난/고금리정책 등 되레 부도·실업 부작용 양산/뒤늦게 정책수정하자 ‘재협상론’ 복권「국가부도」의 벼랑 끝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과 첫 협상을 끝낸 지 1년. IMF의 태도는 총독에서 자문관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만큼이나 국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한국경제의 고질(痼疾)을 치료해 줄 명의(名醫)로 치켜세우던 사람들까지 깐깐한 채권자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IMF 재협상론도 사면됐다. 이들에게 돌을 던졌던 재협상 불가론은 꼬리를 감췄고, 그런 주장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조차 꺼리고 있다.

IMF의 초기 처방은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흔들 정도로 가혹했다. 고금리를 통해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하고, 긴축으로 자본유출을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절반의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와관련, 『IMF가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외국 채권은행들의 자금회수를 촉진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올 1월말까지 IMF 의도대로 고금리에 유인되어 들어온 자금은 2,330만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IMF의 자금지원에도 불구, 외국은행들의 대출금 회수로 가용외환보유액이 39억4,000만달러까지 줄어드는 등 대외지불유예(모라토리엄) 직전까지 갔고, 살인적인 고금리로 수만개의 기업이 쓰러졌다.

IMF와의 1차 의향서가 공개된 이후 이같은 사태를 예상한 재협상론이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불안정이 진정되지 않고 외환이 고갈되자 재협상론이 그 책임을 뒤집어 썼다. 『감상적인 재협상논의로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있다』 당시 차동세(車東世)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양수길(楊秀吉)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이봉서(李鳳瑞)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 김중웅(金重雄) 현대경제연구원장, 이한구(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장, 공병호(孔柄淏) 전경련자유기업센터소장, 강병호(姜柄皓) 한양대교수, 심상달(沈相達) KDI 연구위원 등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재협상 불가론 또는 시기상조론을 폈다. 대선바람에 관료도 전문가도 방향을 잃은 채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도 외면했다. 재협상이 가능하며, 냉정히 접근하자는 김성훈(金成勳) 농림부장관(당시 중앙대 부총장), IMF 처방을 고치기위해 5자협의체를 구성하자는 박영철(朴英哲) 고려대 교수(당시 금융연구원장)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대선때 추가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힌 당시 김대중(金大中) 후보는 재협상 불가론에 밀려 「표」를 잃기도 했다. 150여만명의 실업자가 길거리로 내몰리고 실물부문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서야 『IMF처방은 입에 쓴 양약』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IMF는 여전히 초기처방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는 최근 『한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초기처방의 잘못보다는 인도네시아 사태나 일본경기의 침체 등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재협상 불가론을 주장했던 전문가들은 IMF에 이런 「항변」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 재협상론은 복권됐다. 하지만 재협상론이 막으려 했던 「부작용」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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