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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이른 IMF(격변 IMF 1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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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이른 IMF(격변 IMF 1년:10)

입력
1998.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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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기능 역부족” 국제적 비난/한국·印尼 등 亞 금융위기 고금리·긴축 낡은 처방 실패/외환거래 하루 1조5,000억弗/4,000억弗 헤지펀드까지 가세/국제금융공황 대응 취약국제통화기금(IMF)은 97년 12월 3일 한국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지원을 결정함으로써 아시아 경제위기의 치유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IMF는 실패했다

한국은 그러나 IMF와의 구제금융 합의 이후 정확히 20일만에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급유예) 상황에 직면했다. 마침내 12월 24일 미국 정부가 나서 해외 채권은행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을 해주도록 「강제」함으로써 한국은 모라토리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IMF의 구제금융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한국의 상황은 IMF의 구제금융 요청 발표 이후 더 나빠졌다.

한국 정부가 IMF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97년 11월 21일 원화 가치는 달러당 1,056원, 종합주가지수는 506.07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 원화 가치와 종합주가지수는 급전직하했다. 원화 가치는 구제금융 합의 다음날인 12월 4일 달러당 1,170원을 기록했고, 12월 23일에는 1,995원까지 떨어졌다. 종합주가지수 역시 12월 4일 405.81을 기록했고, 12월 23일에는 366.36까지 떨어졌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됐던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97년 7월 2일 바트화가 폭락한 뒤 1개월만인 8월 3일 IMF는 태국에 172억달러의 구제금융을, 10월 31일에는 인도네시아에 430억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발표했지만 금융위기의 태풍은 잠재우지 못했다. 이 태풍은 더욱 거세져 한국까지 덮쳤다.

■IMF의 실패원인

IMF가 아시아 경제위기의 해법을 찾는 데 실패하자 위기의 골은 더욱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됐다. IMF가 아시아 경제위기의 조기진화에 실패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해외자본의 유출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IMF의 구제금융은 해외자본의 「대탈주극」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한국의 경우 구제금융 합의 이후 12월 23일까지 하루 평균 10억달러의 해외자본이 빠져나갔다. IMF의 구제금융 지원자금은 잠시 한국은행에 머물렀다 채권 금융기관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IMF는 한국 정부와의 구제금융 협상과정에서 부실 금융부문과 단기외채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신용등급은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고, 해외 투자자들은 패닉 현상에 빠져 무조건 한국을 탈출했다.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IMF가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더욱 부추긴 결과가 된 셈이다.

둘째는 IMF가 구제금융과 함께 각국에게 강요했던 무리한 처방 때문이었다. IMF는 환율 안정을 위해 고금리 정책을 비롯한 통화·재정긴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지만 이같은 긴축정책은 기업의 연쇄 부도사태와 실업자 양산과 같은 부작용만 초래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97년 11월 1일 16개 은행의 전격적인 폐쇄 조치로 인해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고, 98년 5월 4일 연료비에 대한 보조금 철폐조치로 야기된 물가 폭동은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왔다. 무리한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정부 예산의 무조건적인 삭감이 얼마나 큰 사회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수술대에 오른 IMF

IMF는 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더이상 국제금융시장의 안전판으로서 기능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 이후 IMF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이번처럼 혹독하게 쏟아진 적은 없었다.

IMF의 가장 큰 취약성은 국제금융 시장의 패닉 현상을 막아줄 수 없다는 데 있다. 국내에서는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면 중앙은행이 나서 예금 보장을 해줌으로써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서 이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누구도 중앙은행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외환거래액은 하루 평균 1조 5,000억달러(98년)에 달한다. 이는 25년전의 하루 평균 150억달러에 비해 무려 100배나 늘어난 것이다. 헤지 펀드라는 단기 투기자본이 전세계적으로 4,700여개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자기자본 규모만 4,000억달러에 이른다.

태국 바트화의 폭락에 이어 동남아 각국의 통화가 연쇄 폭락하고, 해외자본이 순식간에 아시아에서 탈출하며 한국과 동남아 각국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져든 것은 이같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 때문이었다. IMF는 그러나 아시아 경제위기의 발전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98년 10월에 열린 IMF·IBRD 연차총회와 서방선진 7개국(G7) 회담에서 브레턴우즈 체제의 재편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된 것은 IMF의 이같은 한계 때문이었다.<박정태 기자>

◎금융위기 불구경하던 미국 뒤늦게 불똥튀자 “앗 뜨거워”

「찻잔 속의 돌풍이 허리케인일 줄이야」 한국을 뒤덮고 지나간 세계 금융위기는 초경제강국인 미국의 자만심도 앗아갔다. 당초 자본주의 보루로서 세계의 격랑을 헤쳐갈 것이라는 「슈퍼탱커(유조선)론」은 사라지고 흔들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타이타닉」의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의 위기를 첫 감지한 시점은 지난해 10월 27일.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공업지수가 사상최대 낙차인 554.26포인트 하락하며 불안이 시장을 엄습했다. 그러나 그뿐, 『미국은 탄탄하다』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상을 되찾는 저력을 보였다. 이는 시장이 7년째 장기호황을 가져온 미 경제 펀더멘털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때문이다.

세계 11위 경제권이라던 한국의 침몰이 미국에 준 타격도 미미하다. 시장을 잠식당한 미 기업들의 아우성이 이어지기는 했으나 값싼 수입품 유입 등으로 당시 가장 걱정하던 인플레 우려가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즉, 미국에 실보다 득이 많다는 평가였다. 또한 위기가 변혁을 거부하던 아시아 시장의 개방을 앞당기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도 커졌다. 투자기피 지역을 빠져나온 국제유동자금이 「안전금고」인 미국에 몰렸고 다우지수는 7월 사상최고로 치솟았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위기의 파고는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고 러시아, 중남미가 나가 떨어지며 상황 인식도 바뀌었다. 이를 부채질한 것은 악화하는 미국내 사정이다. 미 기업의 생산성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해외시장의 축소와 수입품에 잠식당한 내수시장으로 인해 공급과잉이 빚어지는 디플레이션의 징후가 뚜렷해졌다. 8년동안 자취를 감췄던 불황이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여기에 금융불안에 따른 신용경색이 겹치며 미국도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위기론이 자리를 넓혔다. 급기야 9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미국만이 번영의 오아시스로 남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후 전개된 미국의 대응은 숨가쁠 정도이다. 9월 29일, 10월 15일, 11월 17일 세차례에 걸쳐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IMF에 대해 비판 일색이던 미 의회는 180억달러 추가기금 출연을 결정하는 등 경제 회복에 온 힘을 쏟았다. 결국 세계경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 속에서 「유아독존」이 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뉴욕=윤석민 특파원>

◎‘反IMF’ 외치는 학자들/제프리 삭스­“외자 유출 못막아 되레 투자 불안만”/마틴 펠트스타인­“고금리 긴축정책 경제회복 걸림돌”/조지프 스티글리츠­“공기업 민영화는 본질 벗어난 요구”/폴 크루그만­“대규모 구제금융 새로운 위기 조장”/자그디쉬 바그와티­“월街·美와 복합체 세계 자본 지배 의도”

제프리 삭스 미 하버드대 교수는 올해초 발표한 논문에서 IMF가 아시아 경제위기의 조기 진화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제프리 삭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IMF의 처방과 해법이 잘못됐다는 점에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우선 삭스 교수는 IMF의 접근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동남아 각국과 한국이 차례로 금융위기의 상황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해외자본의 갑작스런 탈출 때문이었는데도 IMF는 이를 막기보다 오히려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IMF가 부실 금융기관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즉각적인 폐쇄를 강조함으로써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며 『IMF가 불을 끄지는 않고 무대위로 올라가 큰 불이 났다고 소리만 쳤다』고 표현했다.

역시 하버드대 교수인 마틴 펠트스타인은 IMF가 구제금융 지원과 함께 각국 정부에게 강요했던 고금리 정책과 재정긴축 등이 각국의 경제회복에 장애가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아시아 각국은 IMF의 「강요」대로 환율안정을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했지만 통화가치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오히려 국내기업들의 부도 사태만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IMF가 구제금융 지원과 함께 강요했던 무역장벽의 철폐, 공기업의 민영화 조치 등에 대해서는 IMF와 「한 식구」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은행(IBRD)의 수석부총재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조차 『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집중해야지 다루기 어려운 문제에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폴 크루그만 미 MIT대 교수는 이들과 약간 다른 시각에서 IMF를 비판했다. IMF의 대규모 구제금융은 국제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겨 새로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같은 시각에서 IMF의 구제금융은 위기에 빠진 채무국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채권 금융기관이 돈을 떼이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려는 것이라고 간파했다.

자그디쉬 바그와티 미 콜롬비아대 교수는 가장 강경한 IMF 비판론자다. 그는 90년대 들어 글로벌화한 세계 자본흐름은 월스트리트와 미재무부가 주도하고, IMF가 이를 지원한다는 「월스트리트­미재무부­IMF 복합체론」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 미 국방부와 군수산업체를 축으로 했던 「군산(軍産) 복합체」를 대체하는 이같은 복합체는 미국 자본의 세계지배를 공고히하는 중심축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박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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