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홍준표 “인생은 새옹지마”/홍준표,정권바뀐후 선거법위반 걸려 “정치생명 위기”/박철언·이건개·엄삼탁 화려한 재기 ‘제2정치인생’/“비리척결” “표적수사” 사건주역들 아직도 ‘舊怨’ 여전「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경구(警句)가 맞춤양복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가 있다. 슬롯머신 사건에 등장했던 주역들의 뒤바뀐 운명은 이 경구를 떠올리며 무릎을 치게한다.
슬롯머신 사건 이후 5년.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당사자들의 처지도 완전히 달라졌다.
서릿발같은 기세로 내로라하는 세도가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린 사건의 주역 홍준표(洪準杓) 검사. 그는 96년 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5대 대선때는 몇몇 동료의원들과 함께 「DJ 저격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문민정부에서 전도양양해 보였던 그의 정치생명은 정권이 바뀐 후 위기에 처했다. 홍의원은 9월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열린 선거법 위반사건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지만 형이 그대로 확정되면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문민사정의 주역으로 당시 야당과 당사자들의 표적수사 주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홍의원이 지금은 현정부의 사정을 보복·표적수사라고 성토하는 입장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홍의원의 이야기. 『무엇이 정의인지 혼돈스러워요. 비리척결에 나섰던 검사는 쓰러져야 하고 대형비리에 연루됐던 사람들은 여권실세로 세상을 자기 품에 안은 것처럼 떵떵거리고… 하지만 아무리 탄압을 받아도 나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까닭은 무엇일까. 슬롯머신 사건 말미에 대검에 차출됐던 홍검사는 「죄인 홍준표」였다. 홍의원의 기억. 『대검에 파견나가 근무할 때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선후배 조차 없었어요. 식당에서 점심을 주문할 때 어떤 간부는 「싼 것 먹어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오로지 김태정(金泰政) 중수부장과 함승희(咸承熙) 대검 연구관 정도가 불러 내 「괜찮을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해 주었어요』
서울지검에 복귀해서도 따가운 눈총을 견디다 못한 홍검사는 정형근 안기부 1차장(鄭亨根·현 한나라당의원)의 도움으로 1년여간 안기부로 파견나가 잠시 숨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 홍검사는 아는 선배 검찰간부들에게 부탁해 친정인 검찰로 돌아오려 했지만 발령지는 수사부서가 아닌 법무부 특수법령과였다. 홍검사의 이어지는 이야기. 『수사검사에게 칼을 주지 않으니 나가라는 이야기밖에 더 됩니까. 지금도 저는 스스로 「대한민국 검사 규격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직이 원하지 않으니 사직서를 낼 수 밖에요. 정치는 내가 살려고 한 겁니다.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3개월간 사건이 딱 7건 들어오더군요. 홍준표에게 가면 「될 일도 안된다」는 소문이 퍼진 거죠』
그무렵 홍검사는 「한국의 피에트로검사」로 알려져 정치권에서의 주가는 상한가였다. 홍검사의 말. 『여·야에서 모두 접촉이 있었는데 국민회의는 성향상 맞지 않았어요. 그무렵 청와대의 최고위층에서 「입당해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어느 지역구든지 줄테니 고르라고 하더군요. 또 안기부에 근무할 때 상관으로 모셨던 조만후(趙萬厚) 정무차관과 검찰출신인 박찬종(朴燦鍾) 선배가 「이 정권에서 사정수사를 했으면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고 권유해 입당을 결심했지요』
슬롯머신사건이 터진지 2년3개월만인 95년 8월 11일. 당시 사건에 연루됐던 박철언(朴哲彦) 엄삼탁(嚴三鐸) 이건개(李健介)씨 등 관련자들이 일제히 특별사면 복권됐다. 문민사정 초기 YS에게 「칼」을 받았던 박태준(朴泰俊) 정주영(鄭周永)씨등도 사면대상에 포함됐다.
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박철언씨. 박의원은 당초 안우만(安又萬) 법무부장관이 올린 사면리스트에 빠져있었다. 당시 청와대에서 YS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K씨의 회고. 『박의원은 YS를 미워할 수 없을 거에요. 결자해지(結者解之)했으니까요. YS가 장관이 올린 사면보고서를 보더니 서명을 안하고 한참을 생각합디다. 그러더니 「하려면 깨끗이 정리해야지」하면서 박씨의 이름을 직접 적어넣었어요. YS가 서명하면서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표정을 짓던 장면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그러나 박씨측 이야기는 다르다. 황태순(黃泰舜) 보좌관의 설명. 『우리도 사면될 줄은 몰랐어요. 나중에 사연을 알아보니 김현철(金賢哲)씨 라인에서 「박의원을 계속 묶어두면 15대 총선에서 여기저기 지원유세를 다니며 반(反)YS정서를 조장할 것이 틀림없다. 차라리 사면시켜 본인의 지역구에만 신경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보고서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직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텃밭인 영남권에서조차 참패한 것이 마음에 걸린 거죠』
박씨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자 부인인 현경자(玄慶子)씨는 남편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대구의 민심이 YS를 버린 탓일까. 현씨는 민자당 후보를 2배이상의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남편의 「한(恨)풀이」를 하며 금배지를 다시 달게된 것이다. 박의원의 회고. 『옥중에서도 아내의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당시 민자당에선 우리를 핍박하느라 무소속까지 포함해 모두 12명을 출마시켰지만 오직 1명이 압도적으로 승리했죠. 지역구민들은 나를 믿어주었던 겁니다』
박의원은 이후 96년 치뤄진 4·11총선에서 당선돼 정치일선에 복귀, 현재 공동정권인 자민련 부총재로 화려하게 제2의 정치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이건개씨는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전국구의원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3공시절부터 인연이 깊은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엄삼탁씨는 15대 대선직전 국민회의에 입당,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지원한 공로로 현재 집권여당 부총재로 활동중이다. 4월 대구달성 지역구 보궐선거에서는 고(故)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장녀 근혜(槿惠)씨와 경합하다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정덕진(鄭德珍)씨 형제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탄(流彈)을 맞았던 대표적 희생자 신건(辛建) 법무부차관은 김대중 후보의 법률특보로 국민회의에 입당한 뒤 현 정권의 핵심요직인 안기부 2차장에 포진, 「실세대열」에 적(籍)을 올렸다.
합종연횡(合從連橫)이 춤추는 정치판에서 다시 만난 슬롯머신 사건의 주역들. 화해했을 법도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구원(舊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홍의원과 박의원은 96년 4·11총선때 다시 마주쳤다. 지역구는 달랐지만 총구(銃口)의 방향은 하나. 홍의원은 총선직전인 4월8일 송파갑 지구당사에서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박의원이 85년부터 92년까지 기업들에게서 250억원을 걷어 사용하다 현재 105억원을 친인척명의로 보관중』이라며 관련계좌 몇개를 공개, 직격탄을 날렸다. 자민련에서 발끈해 홍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했지만 결론은 무혐의.
홍의원의 이야기. 『박의원이 하도 표적수사라고 주장하고 나를 정치검사로 몰아세워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나는 절대 먼저 물지는 않아요. 하지만 상대가 나를 물려고 하면 살기위해 반격할 수 밖에요』
박의원의 말. 『이 사람들이 내 주변 일가 친척계좌까지 철저히 뒤졌어요. 홍의원은 친척·친지 200명 가량의 돈을 깡그리 모아 내 비자금이라고 몰아부쳤어요. 슬롯머신 사건때 자금을 추적했다고 하는데 그 자료가 있다면 왜 그냥 나뒀겠어요. 여당에 들어간 홍검사의 정치행적을 보면 슬롯머신 사건이 보복사정이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건개 의원도 아직 총성없는 전쟁중이다. 『박종철(朴鍾喆) 검찰총장등 당시 검찰 수뇌부는 평생 용서할 수 없어요. 총장이 위(청와대)에서 시키는대로 따라하면 교통경찰이지요. 작년 초 박찬종씨가 우연히 박종철전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인사를 시키길래 「나는 이런 사람 모른다」고 자리를 떴어요』
홍검사의 후원자로 슬롯머신 사건을 지휘했던 송종의(宋宗義) 서울지검장은 대검차장과 법제처장을 거쳐 지금은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밤농사를 짓고 있다. 송검사장의 총평. 『그때를 생각하면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같아요. 아직 소회를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금 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지요』
슬롯머신사건의 「화약고」였던 정덕진씨는 출소이후 다시 도박에 탐닉하다 최근 검찰에 재구속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정씨의 측근 S씨의 이야기. 『아무래도 국내에선 얼굴들고 활동할 수 없을 것 같아 교도소에서 나오면 미국으로 영구이주하려 했지요. 홍검사도 오케이를 했구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미 대사관에서 정씨를 요주의 인물로 찍어 비자발급을 거부해 버린 거에요』
최근 정씨를 다시 조사한 검찰관계자의 이야기. 『정씨를 조사해 보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감옥에서 나오니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는 거예요. 세상은 도둑놈 취급하고… 정씨는 이후 철저히 은둔생활을 했어요. 낮에는 골프치고 밤에는 마작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정씨가 다시 조사를 받을 땐 신기하게도 외부에서 전화 한 통 걸려 오는 게 없더군요. 하찮은 잡범도 전화 한 통쯤은 있기 마련인데…』<이태희 기자>이태희>
◎슬롯머신이 남긴 상처/“검찰 YS 직할부대로”/“PK 인맥이 TK 내몰았다”/흉흉한 소문 나돌아 朴 총장 ‘자의반 타의반’ 사표
『검찰의 일부 간부들이 슬롯머신업계 비리와 관련해 국민여러분께 깊은 실망과 염려를 끼친 것을 뼈저리게 참회하며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93년 5월29일 오전 대검 소회의실. 박종철(朴鍾喆) 검찰총장이 침통한 목소리로 미리 준비한 대국민사과문을 낭독했다. 하지만 슬롯머신사건이 남긴 상처는 검찰이 「반성문」을 한 장 쓴다고 쉽게 아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한바탕 홍역을 앓고난 검찰내부에선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YS가 슬롯머신 사건을 계기로 검찰을 직할부대로 편입시키려 한다』 『PK인맥이 검찰의 SK(서울경기)·TK(대구경북)를 죽이기 위해 사건을 만들었다』『홍준표가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깜짝쇼를 하고 있다』 등등.
유창종(柳昌宗·현 의정부지청장) 당시 강력부장의 회고. 『악성루머가 너무 돈다고 어느 기자가 이야기 해 줘 파악해 봤더니 기가막히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소문을 정리해 대검에 보고까지 했어요. 소문이 얼마나 많았던지 보고서 분량이 4∼5매는 족히 됐던 것 같아요』
그로부터 3개월 뒤. 사법부 재산공개파동으로 김덕주(金德柱) 대법원장이 사퇴한 직후인 9월 13일 박총장도 자의반 타의반 사표를 냈다. 이날 오전 제출된 사표는 오후 2시께 신속히 수리됐다. 임기 2년이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제 총장」이 불과 6개월만에 낙마한 것. 후임자는 김도언 대검차장이었다.
김영수(金榮秀) 당시 청와대민정수석의 설명. 『내가 보기엔 본인이 괴롭고 피곤해서 나갔을 거예요. 박총장이 전화하더니 「김수석, 나 도저히 못하겠어」하더군요. 내가 「왜 그러시느냐. 재산문제라면 이미 끝난 것 아니냐」고 말렸지만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죠』
한 검찰 간부의 설명. 『자의로만 물러났다고는 보기 어렵죠. YS는 TK총장에 애정도 관심도 없었죠. 더군다나 슬롯머신 사건 때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믿음을 주지 못했고요. 여린 성품의 박총장이 TK 사정을 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 측면도 있긴하지요. 손에 피만 묻히고 뜻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날개를 접은 불행한 검찰총장이었죠』
이날 오후 열린 퇴임식. 박총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준비한 퇴임사를 읽어내려갔다. 『아무쪼록 제가 사퇴함으로써 우리검찰이 진정한 사정의 주역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아울러 임기도중 물러나는 검찰총장은 제가 마지막이 되도록 국민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불과 10줄의 퇴임사였다. 한 검사의 기억. 『퇴임사를 보니 총장이 펜으로 직접 쓴 거였어요. 눈물이 납디다. 얼마나 급하게 사표가 처리됐으면 퇴임사를 직원들이 정리해 올리지도 못하고 총장이 자기 가슴에 못박는 이야기만 하고 떠났겠어요』
경위야 어떻든 박총장의 퇴임이후 검찰은 PK출신 인사들의 전성시대가 된다. 슬롯머신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패턴도 달라졌다. 「수사」보다는 「보안」과 「보고」가 최우선적인 고려요소가 됐다. 서초동에 세워진 대검청사는 설계부터 기자들의 중수부의 출입이 원천봉쇄되도록 겹겹의 방어장치가 설치됐고 서울지검 특수부에도 암호를 입력해야 하는 차단문이 설치됐다.
한 법조계 인사의 이야기. 『슬롯머신 사건은 정치적 꼬리표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검찰과 경찰 안기부의 최고위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돼 성역이 없어진 것은 평가돼야 마땅합니다. 검찰도 뼈아픈 교훈을 얻었어요. 통제되지 않는 사정의 칼은 비수가 되어 자신을 찌를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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