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상업적’ 고정관념 버려야/작은 것부터 충실히 하는 제작현장 장인정신 절실/최근 잇단 수상계기 우리영화 자신감 가졌으면영화 한 편 만드는데 11년, 25번의 시나리오 수정, 보통 영화의 5배가 넘는 촬영횟수. 그렇게 만든 「아름다운 시절」이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27일 오후 영화진흥공사에서는 수상축하연이 열렸다. 감독 이광모(李光模·37)씨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어느 문화상품보다 더 한국과 한국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수상소감은.
『덤덤하다(웃음). 오히려 「아름다운 시절」이 국내 개봉(21일)됐을 때 그리스영화제에 참석중이어서 (한국에 없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수상이 한국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자신감을 말하는 것인가.
『일본영화가 붐인데, 대부분의 일본영화는 한심하다. 한국영화보다 낫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도 우리 관객은 한국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냉정하고 비판적이다. 다르다면 일본영화에는 토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없다. 일본은 그 토대에서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같은 거장을 키웠다. 한국영화도 젊은 영화인들의 기를 살려주면서 그 토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아름다운 시절」은 기존 한국영화와 판이하다. 주인공의 얼굴 한 번 클로즈업되지 않는 롱숏(멀리 찍기)과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한국영화사상 가장 커트수가 적은 영화가 됐다)
이 영화를 이른바 예술영화로 작정하고 찍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에 비판적인 이들은 대부분 「자기 틀을 가진 관객」들이다. 나는 영화를 현학적으로 보지 말고, 보편적 감수성만으로 담담하게 보아주기를 바란다. 이 영화를 먼저 본 외국인들은 아주 쉬운 영화로 받아들인다. 그리스의 데살로니키영화제에서는 관객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한국전쟁시기를 다룬 이유는.
『우리 윗세대가 어떻게 인고의 삶을 지탱했고,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는가를 찾고 싶었다. 마치 사후에 아버님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읽으면서 아버님의 생을 머릿속에 그리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응시하고 회상하고 관조하는 영화이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
『88년에 시나리오를 구상했으니 11년이다. 영화 만들 돈이 없어 기다리는 동안 계속 고쳐 쓰게 됐다. 95년에 시나리오가 국제적인 상을 받으면서 영화사를 만났다. 96년 5월 촬영 시작후에도 연기와 기술 하나같이 대충 하려는 자세를 뜯어 고쳐가며 만드느라 시간이 걸렸다. 촬영 자체가 정말 전쟁터였다』
한국에서 영화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가.
『한 마디로 우리 사회처럼 총체적 부실이다. 직업(작업)기강이 무너졌다. 아무리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장인정신이 없다. 기획상품을 만들듯 할리우드보다 더 상업화, 획일화해 있다. 해외시장 개척, 국제영화제 활용에도 너무 무지하다. 관객들도 다양해져야 한다. 악순환이다. 아주 작은 것부터 철저히, 소중히 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 없이 한국영화에 미래는 없다』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도 시인을 지망했던 이씨는 TV에서 「허수아비」(감독 제리 샤츠버거)라는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전공을 바꿔 유학갔다)
평소 영화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유난히 강조한다는데….
『90년대 들어 문화의 중심은 영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학과 영화는 다르지 않다. 모두 삶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영화는「전자오락실에 있는 오락기」나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문화적으로 진지하지 못한 것은 영상매체의 책임이다. 영화는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문화중심이 변하고 있다면 영화는 기왕에 문학이 하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작품은 준비하고 있나.
『이산가족의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아름다운 시절」이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면, 두번째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부조리를 찾아나서는 입장이 될 것이다. 스타일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감독은 관객의 기호에 영합할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이 받쳐주지 못하면 장편영화가 아니라 5분짜리 단편영화, 그도 안되면 홈비디오로라도 찍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약력
▲61년 경기 이천 출생
▲경동고, 고려대 영문학과·대학원 졸
▲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영화과대학원 수료
▲94년 영화사 「백두대간」설립
▲95년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아름다운 시절」 제7회 미국 하틀리메릴 국제시나리오콘테스트 대상 수상·예술영화전용관 동숭씨네마텍 기획
▲96년 중앙대 영화학과 교수
▲98년 「아름다운 시절」 제11회 도쿄국제영화제 금상·기린상, 제37회 데살로니키영화제 최우수 예술공헌상, 제18회 하와이영화제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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