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이 끝나자 논술열풍이 불고 있다. 99학년도 대입시에서 논술점수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자 비밀·고액논술과외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논술학원이 받을 수 있는 수강료는 45분씩 주 5회 수업을 기준으로 8만4,000원이라지만 이 규정은 종이 위의 규정일 뿐이다. 1주일에 5∼6일씩 집중지도를 하고 한 달에 100만원을 받는 학원도 있다. 4∼5명이 팀을 짜 3∼4주 동안에 1,500만원을 모아주기로 하고 논술과외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들끼리만 모인 과외팀이라고 한다. 대학교수들 중에는 한 달에 100만원을 받고 학생을 만나지 않은 채 팩스로 글을 받아 가필·정정해 보내주는 식으로 과외교습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학부모들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논술과외를 시키고 싶어 한다.문제는 그렇게 고액 논술과외를 받으면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느냐는 것이다. 유리한 것이 있다면 원고작성 요령을 익히고, 여러 주제를 다루어 봄으로써 예상문제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정도가 아닐까. 그것만 해도 어디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논술과외는 천편일률적인 「모범답안」을 양산하는 역효과를 빚을 수 있다.
문제는 창의성이다. 어떤 글이든 쓴 사람의 생각과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논술고사에서도 교과서적인 모범답안보다 독특한 생각과 논리가 있는 글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단기간의 속성과외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논술과외는 생각하는 노력을 적게 해 오히려 글의 생명력을 해칠 수 있다. 예부터 글을 잘 쓰려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등 이른바 삼다(三多)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헤아려 생각하는 다상량이 아닐까. 다상량의 바탕 위에서만 창의적인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논술과외를 포함한 우리의 글쓰기교육은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요즘은 육체가 없는채 부박(浮薄)한 감성만이 두드러지는 글이 횡행하는 세상이다. 컴퓨터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시대의 글에서는 점점 육체의 온기가 식어간다. 육필과 육성이 없다. 그리고 어법도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 판친다. 얼마 전 한 문학평론가가 다른 평론가의 글을 비판했다가 논쟁이 빚어진 일도 있지만 평론가의 글조차 문제가 될 만큼 요즘 젊은 사람들의 글에는 비문이 많다. 지금 문단에서는 독창적이면서도 정통작법에 충실한 대형 신인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언어환경이나 글쓰기환경은 엉망이다. 덩달이시리즈, 사오정시리즈같은 농담과 삐삐통신 핸드폰통신이 확산되면서 문법파괴와 어문파괴가 심각하다. 최근엔 신문을 패러디한 딴지일보와 망치일보, 서울대학교를 패러디한 구라대학교라는 인터넷사이트까지 생겨 내뱉듯이 아무렇게나 글을 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은 모르는 말이 나와도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신기할 만큼 불편해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맞춤법과 외래어표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알려 하지 않고 지키려 하지 않는 것은 더 문제다.
특이하고 독창적인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요즘 화제다. 도쿄영화제, 그리스 데살로니키영화제, 하와이영화제에서 잇따라 상을 받았다. 초청제의를 받은 국제영화제가 50 곳이 넘는다. 시인을 꿈꾸다 영화감독이 됐다는 이광모(李光模)씨는 5월에 칸영화제의 감독주간에 참가했을 때 외국 평론가들로 부터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는 시나리오와 촬영필름을 수없이 수정한 끝에 이 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시나리오는 95년 하틀리메릴 국제시나리오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바 있다.
문제는 창의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라는 생각이 대학입시에서 부터 널리 퍼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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