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국 정상회담… ‘공동선언’ 서명 불발/장쩌민 “日 역사인식 기대이하” 불만/아키히토 천황 만찬서 과거사 언급안해26일 도쿄(東京)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은 공통의 주변·국제정세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간 정치·경제협력 확대에 합의했으나 역사의 앙금을 씻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이에 따라 「역사 청산」은 여전히 양국간 현안으로 남게됐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이날 끝내 공동선언에 서명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일본 관방장관은 『애초부터 서명을 상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10월의 한일공동선언과 최근 러일공동선언의 정상 서명 예를 볼 때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선언에 나타난 일본의 역사 인식 수준은 중국측의 기대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침략」과 「깊은 반성」을 명기했으나 「사죄」는 회담에서 오부치총리가 구두로 밝히는 것으로 대신했다. 10월 한일공동선언에서 명기한 「식민지 지배」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는 뚜렷이 대조된다. 江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일본에는 역사청산은 매듭됐다는 견해가 있으나 내 생각은 다르다』며 『양국관계의 발전에 있어서 역사문제는 결코 피해 나갈 수 없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저녁 황궁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도 양국의 엇갈린 시각은 드러났다.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은 과거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江주석은 『일본 군국주의 과오로 중국 국민과 아시아 국민이 커다란 재난을 겪었다』며 『뼈아픈 과거의 교훈을 영원히 되새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본측의 태도는 거듭되는 「사죄 외교」에 대한 보수파의 반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과거사 문제의 청산」을 언명한 한국과 달리 중국측이 아무런 「반대 급부」를 약속하지 않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일본이 강한 의욕을 보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 공동선언이 「안보리를 포함한 유엔 개혁 찬성」에 그치고 만 것도 중일 양국이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을 확인시켰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공동선언과 ‘서명’/법적구속력 없어도 서명은 관례적 의전/공식적 성격 무게부여
정상회담 후 일반적으로 작성·발표되는 공동선언문은 기본적으로 회담 논의사항에 대한 정상 공동의 의지를 정리한 「정치 문서」라고 볼 수 있다. 정상들의 약속이기 때문에 국가간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존중되지만 조약처럼 국제법적인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따라서 서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그 내용에 관해 의회비준 등 국내 추인절차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회담 후 공동선언문이 작성되면 정상들은 관례적으로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합의를 확인한다. 친선과 공감을 표시하는 일종의 의전인 셈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역시 방일기간 중 발표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따라서 공동선언문 서명을 두고 중일간에 벌어진 신경전은 외교관례상 매우 드문 일이다. 법적 구속력과 관계없이 서명의 유무는 공동선언의 무게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게 외교관들의 지적이다. 공동선언문이 서명을 마침으로써 공식적 성격을 확보하는 반면, 서명이 없을 경우에는 아무래도 비공식적인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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