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5대재벌이 개혁을 촉구하는 함성에 둘러싸여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IMF 1년을 되돌아보면서 국내외 언론은 한결같이 재벌개혁이 가장 미진하다고 질타하고 있으며, 얼마전에는 클린턴 미국대통령까지 재벌개혁을 촉구한 바 있다. 김대중대통령도 24일 금융인과의 오찬에서 『단호한 결심으로, 정말로 단호한 결심으로』라는 파격적 표현까지 써가며 5대재벌의 구조조정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재벌개혁은 공공·금융부문의 개혁과 달리 민간기업에 의한 자율적인 구조조정인 만큼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시장경제의 속성을 외면하고 너무 몰아붙인다는 재계내 반론도 이유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를 백분 감안하더라도 5대재벌의 개혁은 정말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에서 5대그룹의 매출액(약 308조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1.8%로 지난해보다 무려 16.1%포인트나 높아질 것이라는 공정거래위의 자료 한가지만 보더라도 재벌개혁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5대재벌은 올해초 40∼60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몇몇 핵심기업군으로 통폐합하고 부실계열사를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계열사가 늘어난 곳도 있다. 경영투명성 제고, 부채비율 감축, 1인지배구조 개선등의 약속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의 경제구조상 재벌개혁이 실패하면 나머지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 구조조정은 곧 5대재벌의 구조조정이나 마찬가지다. 기업대출을 대부분 5대재벌에 집중하고 있는 금융계도 이들의 자금사정이 악화하면 다시 부실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른 시일내에 재벌 구조조정이 성사돼야만 한다.
재벌개혁이 지지부진한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그동안 말로는 재벌개혁을 강조해왔지만 재벌들이 구조조정으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압박하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재벌개혁의 한부분이 되어야 할 빅딜에만 지나치게 매달린 것도 큰 실책이다. 이제 정부는 금융기관을 통해 재벌의 구조조정을 압박할 방침이지만 재벌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금융기관이 그만한 강제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재벌의 구조조정은 재벌 자신의 문제다. 구조조정 없이는 더이상 재벌들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해졌다. 외부의 압력에 떠밀려 마지못해 개혁을 강요당하기보다는 재벌 스스로 과감한 자기수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