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몸보신」이라는 민간신앙이 있다.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기만 하면 개구리건, 너구리건, 반달곰이건 싹쓸이하다시피 잡아먹는 육식동물이 한국사람이다. 또 한국사람들은 낯뜨겁게도 「양기(陽氣)」 타령을 드러내놓고 합창한다. 『양기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뱀이건 사슴뿔이건 허겁지겁 달려간다. 그러니 남성용 회춘(回春) 약인 「비아그라」가 한국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이상할 게 없다. 몸보신이나 양기를 신주로 모시는 신앙에는 내력이 있다. 그 옛날 불로장생술의 유산이다. 신비의 영약(靈藥)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신선술, 그리고 잠자리에서 「올바른 교접술」로 몸의 기(氣)를 보존·보충하면 불로장생한다는 방중술(房中術)이 그 뿌리다. 요즈음엔 이런 믿음에 과학이라는 보자기를 씌워서 파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싸한 「사이비(似而非)」일 뿐이다.비슷한 「사이비」로 풍수설이 있다. 조상의 뼈를 명당에 모시면 자손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믿음이다. 93년에서 94년에 걸쳐 「터」라는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 만큼 풍수지리설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도 있다. 그러나 풍수지리란 그처럼 신비스런 비법이 아니다. 주산(主山)·안산(案山)·좌청룡·우백호의 지형배치가 그 뼈대다. 게다가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해서 물이 흐르면 더욱 좋다. 이런 지형배치는 국토의 75%가 산악인 우리나라에서는 흔하다고 할만큼 많다. 고려 500년·조선 500년동안 역대임금이나 그 친족들이 모두 이런 지형에 무덤을 이룩하고 묻혔다. 하지만 두 왕조 모두 이제는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시대 들어 유학자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년)은 풍수가들을 『귀신과 교섭하기를 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18세기 전반 영조때의 도암 이재(陶菴 李縡)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했다. 『묘지를 구하는 것은 지질의 좋고 나쁜 것을 고르는 것이지 음양가가 말하는 화복(禍福)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조상의 무덤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면 터무니없는 미신일 뿐이다. 또 염치 좋은 이기주의요 천박한 욕심이다. 그러나 돈푼이나 있는 사람치고 「선영」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가족묘지용의 산을 사놓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한다. 누가 뭐래도 이 나라는 풍수지리가 지배하는 나라요,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를 위해 돈을 아낌없이 뿌리는 졸부들의 나라다.
그런 한편에서 「묘지망국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처음에는 분묘면적제한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매장기간 제한론으로 발전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지난 23일 의결했다는 장묘법안도 그렇다. 집단묘지의 매장을 최대 60년으로 제한하자는 이 법안은 과거 93년 7월 보사부가 입법예고했던 것과 같다. 집단묘지의 땅을 재활용하자는 생각은 그럴싸한 것이다. 문제는 이 법안이 집단묘지에 국한해서 규제하자는 데에 있다.
애초에 보건복지부는 개인묘지에도 적용하자는 입장이었는데,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규제개혁위원회가 개인묘지는 제외했다. 참 어처구니없는 규제개혁위원회다. 집단묘지에 묻히는 사람에게는 「개인의 자유」가 없고, 개인묘지에 묻혀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같다. 정말 전국토의 묘지화를 걱정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개인묘지 금지」부터 입법화해야 한다. 과거 70년대에 당시 보사부가 제안했다가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겪는 「빈부격차」도 서러운데 규제개혁위원회는 저승에까지 빈부격차를 짊어지고 가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죽은 뒤에 돈을 갖고 가느냐』고. 규제개혁위원회는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암… 갖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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