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문제가 다시 발등의 불이 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양국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경제회복을 지원하겠지만 통상분야에 대해서는 한국이 보호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철강과 반도체의 불공정관행을 거론하기도 했다. 데일리 상무장관은 또 내년이 「무역위기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클린턴 대통령은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의 내수부양보다는 시장개방을 더 강조했다. 앞으로 미국이 통상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각국이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미국등에 수출을 강화, 통상마찰이 심화되겠지만 불공정거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대미무역은 94년부터 계속 적자를 보이다가 올들어 9월말 현재 17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원화가치 하락에 의한 것이지만 미국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 뿐 아니라 금융 통신 농업 건설 환경 의약품 지적재산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통상압력은 미국의 올해 경상수지 적자 폭이 2,400억달러로 예상돼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응자세는 냉철하고 정확한 상황인식이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우려를 갖게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어려운데다 남북대치 상황인 우리에게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서처럼 강경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거나, 대등한 입장에서 쌍무적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같은 생각은 통상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과거 미국내 여론이나 의회 분위기를 무시한 「자존심 세우기」식의 대처가 통상마찰을 심화시키면서 미국내 지지기반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통상문제는 산 넘어 산이다. 철강이나 반도체 분야를 해결하더라도 양국정상이 조기에 타결키로 합의한 한미투자협정이 또 기다리고 있다. 미국기업에 대한 내국민 대우, 투기성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 스크린쿼터제 폐지등 쟁점이 만만치 않다. 이번 협상이 시급한 외자유치를 위한 「불평등 협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조정등 그동안의 우리 노력을 충분히 설명하여 실익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경제외교가 필요하다. 정부와 재계가 미국측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경제논리로 철저히 무장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통상마찰을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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