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온 북한을 울릴것”해금강에는 북쪽 해안을 향해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촬영금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관광객들이 그쪽 경치가 더 좋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려하자 지키고 서있던 북한의 금강산 국제관광총회사 지도원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군사분계선 지역입니다. 일반인들은 못들어오는 곳인데 특별히 여러분에게 허가된 것입니다. 통일이 되거든 다시 와서 찍으십시오. 남쪽 금강산이 아니고 북쪽 금강산입니다. 좀 남겨놓았다가 통일된 다음 찍읍시다. 이것이 통일의 과제예요』
금강산이 북한만의 것이 아니기 위해서라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금강산에서 만난 북측 사람들은 지도원이나 관리원이나 말을 걸면 모두 통일을 먼저 들먹였다.
해금강으로 가는 길은 군대의 검문소도 지나고 지뢰밭 옆도 지난다. 해금강 뿐아니라 금강산은 어디로 가나 군복이다. 관광단 일행이 장전항에 들어서자 금강산과 함께 맨 먼저 본 것은 항구에 정박중인 소형 군함들이요, 맨 먼저 본 북한인은 통선이 닿는 선착장의 언덕 위에 군데군데 동상처럼 선 군인들이다.
금강산 관광길에서도 마을 인근의 도로변이나 만물상으로 가는 산길 가에도 불쑥불쑥 군인들이 나타났다. 논두렁가에는 「군민일치」 「자폭정신」 등의 구호를 쓴 선전판도 보인다. 아름다운 금강산의 산색은 이런 국방색을 섞고 있었다.
민족의 명산 금강산은 민족의 통일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장전항에 남에서 온 호화 유람선이 뜨고 3개 코스로 나뉘어진 관광단의 10여대씩의 버스 행렬이 지나가고 하는 것을 보고 금강산 자락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우리 관광객들은 궁금해 했다.
버스 행렬을 보고 군인이 지키고 선 등뒤에서 더러는 등을 돌리고 섰거나 못본체하고 지나가고 했지만 더러는 나무 그늘에서 얼굴만 내민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숨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뒤로 돌아선다고 보일 것이 안보이나』하고 말했다. 다 보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 주민뿐이겠는가, 많은 북한 사람들이 저렇게 남한을 숨어서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1972년 남북적십자 회담때 취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일이 있다. 금강산의 북한 지도원이나 관리원은 그때의 안내원들보다도 훨씬 대화가 자유스럽고 주민들의 자세 또한 훨씬 통제선 밖이다.
금강산 관광객은 통일의 역군이 랄 수도 있다. 관광객들이 버스 창밖의 실상을 보고 분개하자 이번 일행중 유일하게 반소매 차림으로 만물상의 천선대까지 올라갔다온 83세의 김각 할아버지는 『흉만 보고 꼬집으려고만 하면 통일이 안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우리 관광단 일행이 북한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말은 두가지였다. 왜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 돈을 벌지 않느냐는 것이고 왜 이산가족의 교신이나 상봉만이라도 실현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아무리 발가벗겨도 더이상 부끄러울 것이 없다. 감추려고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용기를 가지고 금강산부터 개발해 개방하는 것이 북한의 경제적 부끄러움을 더는 길이요 그 개방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다. 관광객들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이번 관광단 가운데 실향민들은 너도나도 두고 온 가족의 소식만이라도 알 길이 없을까하고 틈을 엿보았다. 차츰 내왕이 잦아지면 그 틈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을 가지고 있었다.
장전에 가보면 여기는 남한특구(特區)다. 항내에 뜬 검은 배 말고 하얀 배들은 모두 현대상선 것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남에서 바지선으로 싣고 온 80여대의 버스가 줄섰고 선착장 옆에는 우리측이 경영하는 매점과 450명의 남한인이 숙식하는 숙소가 있다. 온정리에는 우리 쪽에서 대형 공연장을 건축중이다. 장전항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진입로인 온정리까지의 7㎞의 신설도로는 현대측이 자재를 댄 것이다. 앞으로 금강산 관광이 통일로 결실될수만 있다면 이 길이 통일의 첫길로 남을 것이다.
금강산을 오르는 걸음이 통일로 가는 걸음이라고 성급히 기대할 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산구경이나 하러 다니러 왔다갔다 하는 것 같지만 앞으로 수십만명일지도 모를 사람들이 남에서 북한땅을 밟게 될 길이열린 것이라면 이것은 남북분단사에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다.
지금까지는 우리쪽이 너무 서둘러 금강산 입산을 구걸한 감이 없지 않다. 자세를 바로 잡아가면서 그래도 우리가 금강산에 가야하는 것은 통일을 위한 일말의 희망 때문이다.
금강산은 말이 없지만 남북간의 수백번의 회담보다도 이 명산의 함묵(含默)의 함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금강산 폭포의 굉음이 우리 민족을 합의시킬 수 있다. 한번에 천명씩의 발길이 연달아 조용하던 금강산의 길바닥을 울리고나면 이윽고 온 북한 땅을 울릴 것이다. 그래서 북의 것이기도 하고 남의 것이기도 한 금강산 구경을 갈 날이 올 것이다. 금강산 관광의 첫배는 그 첫발이었다고 뒷날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김성우(金聖佑) 논설고문>김성우(金聖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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