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의 ‘娼’ 정지영의 ‘까’…/우리영화의 서글픈 현실속에서 ‘거장의 고집’은 무리한 기대인가「까」(21일 개봉)는 외침이다. 우리사회에 도사리고 앉아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옥죄는 고정관념들. 그것을 『벗어버리자』『까버리자』고 소리친다. 그것도 모자라 발가벗고 거리로 뛰쳐 나간다. 92년 방송사 탤런트연수생들의 누드실습사건이 모델. 영화의 강만홍 교수는 정지영 감독(52) 자신이다. 그를 통해 감독은 「까」의 존재이유를 되풀이 한다. 그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지영을. 그래서 「까」를 놓고 이렇게 말했다. 「하얀전쟁」이나「남부군」을 연상하면 당혹스럽고 실망할 것이라고. 정지영에 대한 고정관념도 버리라는 얘기다.
하지만 누가 이 영화 두 편과 정지영을 떼어놓을 수 있을까. 고정관념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얀전쟁」과 「남부군」을 생각하며 「까」를 보면 묵직한 리얼리스트의 변화에 마음이 무겁다. 「까」에 큰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실 「까」는 단순한 선정주의를 넘어선, 할리우드를 모방한 한국영화에는 없는 미덕들이 있다. 도발적 소재가 가진 현실비판적 메시지도 그렇고 다섯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맞물리는 독특한 형식이 있다. 내레이션의 허약함을 극복하지 못한 탓에 개연성이 부족한 인물들의 상투적 관계가 전체 구성을 흔드는 것은 흠. 하지만 매니저인 강실장(명계남)을 통해 추악한 연예계의 이면을 까발리는 네번째 이야기는 날카롭다. 81년 데뷔작 「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 96년 「블랙잭」에 이어 감독의 스릴러적 재능이 다시 한번 번뜩인다.
촬영이 끝나고 명씨는 『형님, 이런 것 말고 큰 영화 만듭시다』라고 했다. 누구나 같은 얘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정지영이 누군가. 90년대 멜로드라마를 박차고 나와 현대사의 질곡을 스크린에 옮겨 세계에 한국영화를 알린 인물, 불합리한 영화제도와 할리우드 직배에 맞서려고 가장 먼저 달려나온 싸움꾼. 그 밑에서 허약한 한국영화는 체질을 바꿔갔고 후배들은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설 땅을 잃고 있다. 만약 「까」가 단지 이 땅에 감독으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라면 불행이다. 누가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가.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라고 흥행부담이 없었을까. 거장은 자기세계를 지키는 고집이 먼저다. 그러나 임권택은 「창」 정지영은 「까」를 만들어야 하고, 또 만들게 하는 한국영화계에서 거장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힘든가. 그들을 존경하고 아끼자. 먼저 영화인들부터.<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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