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弗 예산책정 ‘장기포석’/아랍 등 국제여론 무마 관건이라크 사태가 일단 무력 사용의 고비를 넘겼다. 표면상으로는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이 승리한 형국이다. 그러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교묘한 「치고 빠지기」 전략에 또 한 번 당한 셈이 됐다.
클린턴은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라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폭격을 가하겠다』며 군사행동 철회를 공식으로 밝혔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 수락 서한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며 거꾸로 군사력을 증파했지만, 무력응징에 반대하는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유엔 안보리의 강한 반발에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거 여러번 당한 것처럼 또 다시 속을 지 모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평화적 선택을 한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미국은 15일 후세인을 권좌에서 밀어내겠다는 정책 목표를 처음으로 천명했다. 클린턴은 『후세인은 이라크 국민의 복지는 물론 지역사회와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는 존재』라며 『최종적인 해결책은 이라크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이달 들어 이라크 사태가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미국내에서는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공화당쪽에서는 『공습에 이어 전면적인 군사작전을 개시, 후세인을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후세인의 권력기반인 공화국 수비대를 집중공격, 후세인 지지세력을 제거함으로써 군부내의 쿠데타를 유도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클린턴은 지난달 의회를 통과한 「이라크 해방법안」(Iraq Liberation Act)에 서명한 바 있다. 이 법안은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민주적 정부의 수립을 위한 활동을 지원한다」는 목적 아래 1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놓았다.
하지만 미국이 곧바로 후세인 제거를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국제적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랍권과의 정면 충돌도 예상된다. 미국의 작전이 UN 사찰의 성사목적을 넘어선다고 판단될 때는 국제사회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게 분명하다. 더욱이 전면적인 군사작전의 경우 민간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클린턴의 후세인 축출 의지는 장기적인 포석일 수밖에 없는 희망사항이며 미국은 우선 명분을 쌓아가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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