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가와 나가하루(淀川長治). 11일 89세로 세상을 떠난 그를 두고 일본 열도가 추모 물결에 젖어 있다.평생의 벗인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일본에 「영화 만들기」를 가르쳤다면 그는 「영화 즐기기」를 가르쳤다. 제2의 영화부흥기를 맞아 두 사람을 잇달아 떠나 보낸 일본 국민들의 심사가 예사롭지 않다.
일요일밤 아사히(朝日) TV의 「일요 양화극장」에서 그는 늘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청자를 대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쪼글쪼글한 얼굴에 안경을 걸치고, 생글생글 웃으며, 반 합죽이 입으로 열심히 눈여길 대목을 알려 주었다. 영화가 끝나면 간단히 소감을 덧붙이고 「안녕, 안녕, 안녕」이라는 인삿말을 던졌다. 그 표정과 반복 어법에 미소를 머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15일 밤 「일요 양화극장」은 생전 마지막으로 요도가와가 해설을 붙인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라스트맨 스탠딩」을 방영했다. 영화 방영에 앞서 아사히 TV는 「안녕, 요도가와」라는 특집을 통해 그의 영화 인생을 되새겼다.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그는 영화광인 부모의 영향으로 네 살 때 영화를 만난 이래 평생 주 9편 정도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잡지 기자와 편집장으로 20년간 일한 후 영화평론을 시작했다. 중졸이 최종학력이지만 직접 영화를 보고, 배우와 감독을 만나고, 책을 읽은 그의 경험과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삶을 더욱 기름지게 한 것은 성실이었다. 66년 「일요 양화극장」이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해설을 빠뜨리지 않았고, 48년부터 월 1회 「도쿄(東京) 영화벗 모임」을 열어 93년까지 영화 지식을 전했다. 15일 밤 「라스트맨 스탠딩」이 끝난 후 그의 인삿말은 역시 「안녕, 안녕, 안녕」이었다. 신부전증으로 죽기 전날인 10일 녹화한 장면으로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수척한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맑았다. 스스로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일군 멋진 삶, 마지막 순간까지 불태운 그의 「안녕」은 생생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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