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東京)의 한 대학 교수로 있는 일본인 지우(知友)가 학술관계로 북한에 갔다가 금강산을 보고 와 전하는 소감이 『남북통일이 안됐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표정으로 보아 농반(弄半)인 줄을 알면서도 웬 엉뚱한 소리인가 해 물었더니 통제된 사회에서 잘 보존된 금강산이 통일후 얼마나 훼손되겠느냐는 「걱정」이었다. 같이 웃기는 웃으면서도, 남북통일을 말할 때 우리가 느끼는 표현하기 어려운 뭉클한 감정과 이민족이 단순하게 이해하는「지리적 통일」의 엄청난 차이를 얼핏 생각했었다.일본 연수중이던 89년 일로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금강산」 가는 길이 우리 앞에도 뚫렸다. 이레 후면 금강산 가는 배가 첫 출항한다.
다른 나라 사람이야 금강산에 간다면 구경하러 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통일의 날을 기대하며 간다. 첫 배의 손님 가운데 절반이 채 안되는 실향민만 통일될 날을 그리며, 한(恨)과 기쁨을 함께 품고 금강산에 가는 것이 아니다.
미 CNN 방송은 현대그룹의 금강산 종합개발사업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한국의 햇볕정책이 잘 어우러진 「비즈니스 딜(Business Deal)」의 결과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마음으로 느낀다. 한 기업이 나서 성사시킨 것이라 해도, 우리의 통일 염원이 금강산 관광사업에 스며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금강산 가는 길이 통일로 가는 첫 발이라면, 그 길은 우선 남북간에 가로 놓인 불신의 장벽을 뚫는 길이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길을 눈 앞에 두고, 50여년에 걸쳐 쌓아 올려진 장벽의 높이를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북한이 현대에 보낸 「금강산 관광세칙」을 보며 느끼는 소회다.
알려진 것처럼 이 세칙대로라면 금강산 관광객은 관광은 커녕 내내 벌금걱정만 하다가 돌아 올 것이라는 지적이 맞다. 일부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공화국의 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돼 있어, 긴장속에 몸조심 하느라 고향땅이, 천하 절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게 돼 있다.
그렇다고 이 세칙때문에 힘들게 뚫린 금강산 길이 다시 막혀서는 안될 일이다. 그랬다가는 불신만 한 켜 더 쌓일 것이 뻔하다. 그래서 북한이 현대와의 협상에서 자신들이 세칙에서 밝힌대로 「군사통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을 허용한 동포애적인 선의」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광객을 정탐꾼으로 치부하면서도 오로지 외화벌이 때문에 금강산 길을 텄다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가령, 세칙에 「군사대상물에 대한 촬영은 전기간 일체 금지한다」고 돼있는데 촬영이 금지된 군사대상물에 관광객이 잘 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하는 성의는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정부와) 현대도 북한과의 세칙 협상에서 그들의 「처지」를 감안할 것은 감안하면서, 그들의 우리를 향한 불신을 씻어 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북쪽의 자연보호 개념이나 남북 특수상황에 대한 인식같은 것을 이해해주는 바탕위에서 접점을 찾아 갔으면 하는 것이다. 현대가 금강산 관광객에게 배포하기 위해 제작한 안내책자를 보면 「관광중 기암절벽에 새겨진 선전문귀나 구호를 보고 비판하거나 욕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이 있다. 실소(失笑)할 수도 있지만 북한이 어떤 사회인줄 아는 우리로서 지켜줄 수 있는 일 아닌가.
어렵게 성사된 금강산 관광이니 웬만하면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자는 감상(感傷)이 결코 아니다. 불신의 벽을 뚫는 게 아니라, 거꾸로 불신을 더 깊게 하는 「금강산」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노파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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