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1일)로 막을 내리는 이번 국감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공기업은 공(公)기업이 아닌, 공(共)기업 또는 공(空)기업이라는 사실이다. 공공의 목적과 이익을 위한다는 의미의 공(公)이 아니라 함께 나눠먹자는 식의 공(共), 경영이 부실투성이인 공(空)기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뜻이다.공기업은 공룡이다. 중앙정부 지분이 절반이상인 투자기관·출자기관 및 그 자회사만 따져도 108개에 이르고 이들이 쓰는 예산은 정부예산(약 70조원)보다 훨씬 많은 100조원에 달한다. 종사자도 21만명이 넘는다. 여기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마사회등 437개 정부산하기관, 금융관련 공기업, 각 지방단체에서 출자한 지방 공기업까지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어마어마하다.
그 공기업의 난맥상 일부가 이번 국감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퇴직자에게 은행빚까지 끌어다가 수억원의 퇴직금을 아낌없이 지급했는가 하면, 재벌기업 부럽지 않게 막대한 접대비를 펑펑 쓰고, 감사원의 지적도 무시해 가며 많은 학자금을 지급해 왔다. 어떤 기관은 억대 퇴직금도 모자랐는지 퇴직간부들에게 확실한 수입이 보장되는 매점 휴게소 등을 헐값에 특혜임대해 주기도 했다. 『억대 퇴직자는 일부』라거나, 『기업인 이상 접대비 지출은 불가피하다』는 반론을 인정하더라도, 국민의 혈세를 자기 주머니돈처럼 나눠먹기식으로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공(共)기업은 누가 만들었는가. 다름아닌 권력, 관료, 공기업간부, 노조이다. 공기업이 정치권력에게는 정권창출의 공신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두둑한 전리품이고, 관료들에게는 퇴직이후를 보장하는 안전판이자 특정부서 출신끼리 집단적 공생(共生)관계를 형성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정부 들어서도 정부투자기관의 임원급중 절반이상이 정치권 인사, 관료, 군출신 등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낙하산 인사에 밀려 승진은 어차피 한계가 있고, 경영의 성과 역시 자기 하기보다는 정부의 지침 하나로 왔다 갔다 하는 상황속에서 공기업 종사자들이 비전과 의욕을 갖기란 쉽지 않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무사안일이나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어떤 공기업이 『직원사망시 배우자를 채용하라』는 노조측 요구에 대해 『향후 여건이 호전되면 노력하겠다』고 단체협약을 맺은 것이 드러나 의원들의 질타를 받은 것은 그런 대표적 예가 아닐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익(私益)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왜곡된 구조가 공기업을 뿌리부터 썩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뿌리 위에 알찬 열매가 맺어질 리 없다. 방만한 투자로 수천억원을 날리고 업자들과 결탁해 예산을 낭비하는 부실경영 행태가 공기업 곳곳에서 드러났다. 속이 비어있는 공(空)기업이자, 도처에 구멍이 뚫린 공(孔)기업이다.
개혁의 향도가 되어야 할 공공개혁이 오히려 가장 부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기업을 개혁할 수 있는 주체인 권력, 관료, 경영자들이 공생관계로 얽혀 있으니 개혁은 시늉에 그칠 뿐이다. 공기업 통폐합에 당사자보다 상급 정부기관이 먼저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도 아무도 채찍질을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기업의 개혁은 곧 정부의 개혁이자 정치개혁이다. 권(權)정(政)공(公)의 공생구조를 깨고 규제의 사슬을 풀어 공기업을 자유롭게 해야만 공(共)기업이 공(公)기업으로 거듭 날 수 있다.
이제라도 공공개혁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금융권에는 일률적으로 직원 30%이상을 내보내라 명령하고, 교사들의 정년을 하루아침에 5년씩 단축시킨 개혁의 칼바람에 언제까지 자신은 예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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