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9일 낮으로 예정됐던 총재회담을 당일 오전에 무산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여야는 협상창구를 통해 의제, 합의문 등을 거의 매듭지은 뒤 회담개최를 발표해 왔다. 따라서 7일 회담일정이 발표된 이후 정가는 당연히 사전에 회담내용에 대한 절충이 이뤄졌을 것으로 여겼다.그러나 결국 여야가 의제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거듭하다 회담 자체를 무산시키자 정가는 『한마디로 미스터리』라고 말하며 이런 사태를 초래한 가까운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협상창구가 총장, 총무로 왔다갔다 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여야는 이번 회담을 추진하면서 개최여부는 총장, 회담의제와 합의문작성은 총무로 협상을 사실상 이원화했다. 그러다 9일 막판에 협상이 난항을 겪자 다시 총장들에게 회담의제 협상을 일임하는 널뛰기 행보를 보여줬다. 총무들은 협상에 들어가면서 『총장들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고 입을 모아 두 채널간의 미묘한 관계를 느끼게 했다.
둘째는 회담성사의 공(功)을 의식, 성과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여야 지도부가 충분한 사전정지작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9일 회담」안을 공개한 게 실책이라는 지적이다. 7일 조세형(趙世衡) 국민회의 총재대행으로부터 영수회담 건의를 받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도 『당에서 후속조치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환기시켰다는 게 그 근거. 의제, 합의문등과 관련해 확실한 그림이 제시되지 못한 까닭에 김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경제청문회 개최를 둘러싼 한나라당측의 갈지(之)자 행보도 내부의 충분치 못한 사전조율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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