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정치 세태에 ‘막걸리선거’ 유행어/‘양공주’ ‘사사오입’ ‘재건’/50·60년대 풍자어 화제/70년대 ‘복부인’ 탄생/80년대 ‘보통사람’ 회자/90년대 ‘토사구팽’ 이어 IMF 반영 ‘낙지부동’까지언어는 시대의 산물이어서 그 사회를 반영한다. 그래서 언어를「문화의 색인」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행어는 시대와 세태를 잘 나타내 주고있다. 광복이후 정부수립때까지는 독립 정부를 세우기 위한 산고의 시기였다. 한국민들은 광복의 감격과 함께 세계정세를 걱정해야 했다. 『소련놈에게 속지말고 미국놈 믿지마라. 일본놈 일어난다』는 유행어는 이러한 세태를 반영했다. 광복되던 해 귀국한 이승만(李承晩) 박사는 민족분열을 경계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외쳤다.
6·25전쟁이 발발해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불법 남침」 「양민학살」 「인해전술」등과 같은 전쟁관련 유행어가 많아졌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이들을 상대하는 여인들이 많아지면서「유엔 사모님」 「양공주」란 말이 유행했다.
50년대 후반에는 밀수로 한 몫 잡은 「마카오 신사」들이 활개를 쳤고 모든 조직에 「프락치」가 설쳐댔으며 「와이로」와 「사바사바」앞에 정직한 사람들은 맥을 못춰 죽을 때도 「빽」소리를 지른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가짜 이승만 대통령 아들이 「귀하신 몸」행세를 하며 전국을 휘젓고 다니고 대통령의 방귀소리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첨꾼들이 즐비했다. 부정선거가 계속되자 「사사오입」 「막걸리 선거」 「피아노 표」 등 타락정치의 풍자어가 양산됐다.
50년대 유행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대생 수십명을 농락한 박인수사건. 55년 재판부가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판결을 한 이후 장안의 화제가 됐다.
60년대에는 4·19와 5·16이 일어났고 베트남파병이 있었다. 이 시대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도탄에 빠진 국민의 심정을 대변한 말로 유행했다. 4·19로 대통령이 시민에게 굴복해 『국민의 원한다면 하야하겠다』고 한데서 연유한 『국민이 원한다면…』도 인기를 끌었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민생고 해결」을 혁명공약으로 내걸만큼 굶주림이 심각했지만 그 말은 돌고돌아 점심을 먹는다는 의미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더불어 유행한 말이 「조국 근대화」와 「재건」이다. 「재건데이트」를 비롯, 모든 일에 「재건」이라는 말만 붙이면 절약의 의미로 통했다.
60년대초 유행어의 백미는 김종필(金鍾泌)씨가 탄생시킨 「자의반 타의반」. 소위 4대의혹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63년 2월 외유길에 오르며 남긴 이 말은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오랫동안 애용됐다.
70년대에는 유신정부가 들어서고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는가 하면 부마사태, 12·12사태가 일어났다. 유신국회에서 국회가 무력해지자 의원들은 『집에 가서 애나 본다』고 자조했고 이는 「애보기」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70년대 후반에는 경제성장이 피크를 이루고 부동산 경기가 꿈틀거리면서 「복부인」이 탄생했다.
이들은 다시 골동품 투자에 열을 올려「골부인」이라는 신조어를 파생시켰다. 10·26이후에는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의 말에서 연유한 『한다면 합니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80년대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이철희(李哲熙)·장영자(張玲子) 사건, 아웅산폭탄테러사건 같은 대형 사건이 연이어 터졌고 올림픽과 5공 청문회도 열렸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땡전뉴스」로 집약되는 언론통제속에 「유비통신」 「카더라통신」이 범람했다. 장영자·이철희의 금융부정사건은 「큰손」이라는 유행어를 남기면서 「정의사회」를 「장리(張李)사회」라는 말로 바꾸게 했다. 87년 4월 범양상선 박건석(朴健碩)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인간이 되시오』라는 말도 한동안 애용됐다.
『믿어주세요』라며 등장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하면서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5공 청문회는 『기억이 잘 안납니다』라는 회피성 발언을 양산했고, 탈옥수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90년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당선된뒤 「군사정부」에 대칭되는 「문민정부」라는 말이 즐겨 쓰였다. 우리 것을 지키자는 「신토불이」를 비롯, 「고통분담」 「복지부동」 「문민독재」 「표적수사」에다 「토사구팽」이라는 말도 유행어로 등장했다. 「준비된 대통령」에 의해 광복후 첫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도 IMF체제와 관련한 유행어가 만발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낙지처럼 책상에 매달려 일만 하게 된 현실을 빗대어 「낙지부동」이라는 서글픈 말도 나왔다.<권대익 기자>권대익>
◎주요 사건·사고/59년 태풍 ‘사라’ 남부강타 832명 사망/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57명 사망/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 붕괴/68년 무장공비 21명 청와대앞까지/82년 우순경 의령서 총기난동 벌여/81년 이윤상군 살해 94년 지존파 악명
정부가 수립된뒤 50년동안 국내에서는 숱한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50년대=전쟁이 한창이던 53년 1월9일 여수항을 출발, 부산으로 향하던 여객선 창경호가 다대포앞 거북섬 앞에서 침몰했다. 승객 236명 중 229명이 수장되고 7명만이 구조됐다. 정원을 100명이나 넘게 초과승선시킨 것이 원인이었다. 불과 20여일뒤인 1월30일 부산국제시장에서 큰 불이 났다. 2,000억환이라는 천문학적 재산피해와 1만8,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시장안에 있는 요리집에서 접대부와 손님이 어울려 춤을 추다 석유 등잔을 넘어뜨린 것이 화인이었다.
55년에는 70여명의 여대생을 농락한 박인수(朴仁秀)사건이 단연 시중의 화제였다. 훤칠한 키에 해군 헌병장교 출신인 그는 법정에서 『70여명의 여성중 1명만 처녀였다』고 주장, 큰 파문을 일으켰다. 59년 9월17일 추석에 내습한 태풍 「사라」는 남부지방을 강타해 우리나라 태풍피해의 대명사가 됐다. 16일오전 중앙관상대는 추석에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보했으나, 태풍 사라로 인해 사망자 832명, 실종자 344명, 이재민 39만명이란 엄청난 피해가 나 비난의 표적이 됐다.
■60년대=도쿄(東京)올림픽이 열리던 64년 도쿄에서는 남북분단의 아픔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있었다. 신문준씨는 도쿄에서 북한 대표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딸 금단씨를 7분간 재회, 이산가족의 아픔을 전세계에 알렸다.
68년 1월21일에는 김신조씨 등 북한 무장공비 21명이 청와대 앞까지 잠입,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던지는 등 서울시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70년대=70년 3월17일 밤 한강변 도로에서 미모의 20대 여인이 코로나 승용차 안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이른바 정인숙사건. 오빠가 남자관계가 복잡한 여동생을 「문중의 명예」를 위해 죽였다고 했지만 정씨의 수첩에는 사회저명인사 26명의 명단과 전화번호가 나와 세간에 온갖 소문이 들끓었다.
보름뒤인 4월8일 새벽 와우아파트가 붕괴돼 지금도 부실공사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71년 8월10일 서울에서 밀려나 경기도 광주에서 살고 있던 철거민 5만여명이 분양지 불하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파출소 방화 등 난동을 벌였다. 2주뒤인 23일 인천 앞바다 실미도에 수용중이던 공군 특수부대원 23명이 서울로 탈영, 난동을 벌이다 15명이 자폭했다.
크리스마스 전날인 71년 12월24일 영화 「타워링」을 연상케 하는 대연각호텔 화재가 있었다. 이 화재로 157명이 사망했다. 75년에는 전국을 누비며 17명을 연쇄살해한 살인마 김대두가 검거됐다.
77년 11월11일 전북 이리역에서는 다이너마이트 24톤이 폭발, 59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호송원이 술을 마시고 화약 열차안에서 촛불을 켜고 잔 것이 폭발 원인이었다.
■80년대이후=이윤상군 살해(81년), 우순경 의령 총기난동(82년), 미결수 집단 탈주(88년), 시체 소각로까지 설치해 강도행각을 벌인 지존파(94년) 등 강력사건이 잇따랐다. 90년대 들어 일어난 성수대교(94년), 삼풍 백화점(95년) 붕괴사건은 초고속성장만을 추구해 온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젊은이의 은어·속어/징집영장→청춘차압장/미니스커트 여자→따오기/90년대 오렌지족 등장/부모에만 의존→캥거루족
은어와 속어는 시대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특히 젊은이의어와 속어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묘사해 준다.
50년대에는 전쟁으로 인해 군입대를 고생길로 여겨 징집영장은 「청춘 차압장」이었다. 「오촌오빠」는 애인을 가리켰으며 애인을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을 「시사회」라고 불렀다.
60년대에는 막 보급되던 형광등과 스위치를 넣은뒤 한참후 켜지는 진공관식 텔레비젼을 눈치가 무딘 사람에 빗대어 사용했고 애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경우 「지점을 낸다」고 했다.
70년대에는 동요 가사를 응용,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를 「따오기」라 불렀다. 애인을 바꾸면 「궤도수정」이었다.
80년대에는 여러명의 애인을 사귀면 「문어발 기업」, 임시애인은 「핀치히터」로 지칭됐다. 또 미팅이 활발해지면서 고고미팅은 「고팅」, 야외미팅은 「야팅」, 갑자기 하는 미팅은 「졸팅」, 버스 안에서 하는 미팅은 「토큰팅」으로 불렸다.
90년대에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다니면서 노는 이른바 「오렌지족」과 그 아류격인 「낑깡족」이 나타났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밤거리에서 여성들을 꾀는 「야타족」이 나오는가 하면 「미시족」의 등장으로 유부녀와 처녀와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IMF체제이후 대학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려워지자 졸업자체를 미루거나 부모에게 용돈을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생겼다. 또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등장하는 사오정을 주제로 한 동문서답형 「사오정시리즈」는 IMF체제로 인한 허무주의와 자아상실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건국 50주년 주요사건·사고
48.10.20 여수·순천 반란사건
49. 9.14 목포형무소 350명 탈옥사건
50. 6.25 한국전쟁
51. 1.15 국민방위군사건
53. 1.30 부산국제시장 화재
55. 5.31 여대생 농락 박인수 사건
57. 9. 1 가짜 이강석 사건
58. 5.21 KNA기 납북
59. 9.17 태풍 사라호 한반도 강타
60. 1.26 서울역 압사사건
63.10.23 남한강 소풍 어린이 49명 익사
64.10. 9 신금단 부녀 상봉
67. 8.22 매몰광부 양창선 구출
68.11.23 김수환 추기경 서임
69. 1.20 한글전용 반대교수 파면
70. 4. 8 와우아파트 붕괴
71.12.24 대연각 화재
72.12. 2 시민회관 화재 53명 사망
74.11. 3 대왕코너 화재 88명 사망
75.10. 8 살인마 김대두 검거
76. 8.18 북한군 판문점 도끼 만행
77.11.11 이리역 폭발사고
78.10.18 여배우 최은희 납북
79. 6.20 YH 근로자 사건
80. 4.21 사북사태
81.11.30 이윤상군 살해범 검거
82. 4.26 의령 우순경 총기난동
83. 9. 1 KAL007기 피격
84. 9. 1 한강 대홍수
85. 9.20 남북한 고향방문
86. 8.14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
87. 1.14 박종철씨 고문치사
88.10.16 탈주범 지강헌 일당 인질극
89. 5. 3 동의대 진입 경찰 사망
91. 3. 낙동강 페놀사건
92.10.28 휴거소동
93.10.10 서해 훼리호 침몰
94. 9.21 지존파 일당 검거
95. 6.29 삼풍백화점 붕괴
96. 9.18 강릉 북한 잠수정 침투
97. 8. 6 대한항공 괌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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