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을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한 유엔총회의 결의는 매우 의미있는 선택이다. 2001년은 새로운 천년(milennium)의 원년이자, 21세기가 시작되는 첫해이다. 지난 천년동안 과학기술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서구 기독교문명이 인류문화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지만,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볼 때 다른 문명과의 갈등과 충돌이 우려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문명간 대화」는 시대적인 공감대를 이루는 주제어라 하겠다.「문명간 대화의 해」 선포가 이슬람문명권의 이란 외무차관에 의해 발제됐고, 유럽연합(EU)국가를 포함한 다양한 문명권의 40여개국의 동의로 투표 없이 채택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문명간의 갈등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인식을 말해 주는 것이며, 또한 인류평화를 위해서는 문명간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명충돌이라는 패러다임(틀)으로 탈냉전이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망하게 된 것은 1993년 새뮤얼 헌팅턴교수의 논문이 계기가 됐다. 냉전시대에는 모든 국가가 서방이냐, 공산주의냐, 제3세계냐로 갈라져 충돌과 갈등을 겪었지만 탈냉전시대의 국가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소속 문명권을 중심으로 규정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많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를 늘려가고 있다. 탈냉전이후 일어나고 있는 국제분쟁이 문명갈등의 양상을 확연히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표본적인 사례가 서구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대립이다. 전 유고연방에서 일어나는 피의 살육이나, 이란 리비아등 이슬람국과 미국의 긴장관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이를 말해준다.
중국의 경제적 비약과 인도의 부상은 장차 아시아지역에서 유교문명·힌두문명·이슬람문명·서구문명이 교차하면서 일으킬 긴장과 마찰을 예견하게 한다. 특히 21세기의 슈퍼파워인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바로 유교문명과 서구문명의 접촉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도 바로 이 두 문명이 화학적 융합을 하느냐 물리적 충돌을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명간 대화의 초점은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의 역할에 맞춰져 있다. 모하메드 자리프 이란외무차관이 『인종·민족·종교·문화의 다양성은 힘의 원천이지 분열의 원천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라든지 인도대표가 『이상해 보이는 외래문명을 위험하다거나 비문화적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지적은 서구문명에 대한 다른 문명권의 방어적 개념을 띤다는 맥락에서 우리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21세기의 세계는 더욱 하나로 묶어지고, 삶의 질을 풍부하게 하는 문화의 다양성이 긴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문명간의 조화로운 만남은 전쟁과 평화의 차원을 넘어서는 삶의 본질적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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