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땅 남원의 명승 광한루에서 방자가 이도령의 뜻을 받아 춘향의 마음을 끌기 위해 말했다. 『내 모신 도령님이… 연안 이씨 천하에 대성(大姓)이요, 삼한(三韓)의 갑족(甲族)이라』19세기 후반에 우뚝솟은 예술가였던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1812∼1884년)의 「춘향가」는 두 남녀의 만남을 이렇게 시작했다. 「갑족」이란 세상에서 으뜸가는 집안이라는 뜻이고, 「삼한」이란 천하를 뜻하는 말이다.
원래 마한·진한·변한을 가리키는 「삼한」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왕조때 흔히 쓰인 말이었다. 그것이 신재효의 판소리 「춘향가」에도 나오는 것으로 봐 19세기까지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신재효의 판소리 여섯마당중 「박타령」에서는 놀보를 가리켜서 『삼국에 유명한 부자』라 했고,『삼도(三道) 유명…』이라고도 했다. 삼한이 삼국·삼도로 발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땅을 가리킬 때 으레 썼던 역사적인 말 한가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삼한」은 이제 역사책에나 나오는 「죽은 말(=死語)」이 됐다.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수도 「서울」의 한자표기를 들 수있다. 「삼한」이 죽은 말이 된 것과 달리, 「서울」을 한자로 표기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서울」이라는 말이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과 관련된다는 점은 꽤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나라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徐伐)』이라 했다고 적은 다음 서울을 뜻하는 「京」을 「서벌 경」이라 새긴다고 적어놨다.
그래서 고려때인 13세기까지도 지금 우리가 말하는 서울은 「서벌=徐伐」이라 말하고, 한자로 그렇게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삼국사기」에는 「소벌공(蘇伐公)」이라는 사람이름도 있다.
「서울」의 족보를 캘 때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백제에도 있다. 백제의 국도였던 지금의 부여, 당시의 「사비」가 「소부리(所夫里)」라고도 불리웠다는 사실이 그것이다.(삼국사기)
「소부리=所夫里」란 신라의 서벌이나 소벌과 같은 소리의 말을 이두(吏讀)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불」을 그렇게 적었을 것이다.
결국 서벌 또는 소벌은 소부리(=소불)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이러한 지명(地名)이 백제·신라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 옛날 문물의 흐름을 짐작케 해준다. 대체로 신라에서 백제로 흘렀다기 보다는 역사의 큰 흐름으로 봐서 그 반대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서울」을 한자로 어떻게 표기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에 가장 가까운 표기는 서벌의 「서=徐」와 「불」을 표시한 소부리(=소불)의 「부리=夫里」다. 이들을 합쳐 놓으면 「서부리=徐夫里」가 될 것이다.
오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 방문길에 나선다. 그에 앞서 정부는 중국에 대해 「총통」이 아닌 「대통령」으로, 「漢城=한성」이 아닌 서울로 부르고 써달라고 요구했다 한다. 당연한 요구다.
문제는 「서울」이다. 한자가 동북아3국 공통의 문자였던 과거에는 우리 자신이 쓰는 것이 3국공통으로 통했다. 따라서 중국측에 서울의 한자 표기를 맡긴다는 것은 긴 역사적 전통과 다르다. 먼저 우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게 순서다.
北京이나 東京에 비해 「徐夫里=서부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대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많은 사람이 토론에 참여해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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