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사정압력 등 의식 ‘의외 선택’/여권 부정평가 정상화 시간 걸릴듯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4일 「세풍(稅風)사건」에 대해 전격 사과함으로써 8월말부터 마구 꼬여온 대치정국의 실타래는 일단 한 가닥을 잡게 됐다. 이총재의 사과는 여당이 내건 여야 영수회담의 핵심적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총재가 사과전후에 깐 여러 수사(修辭)들이 여전히 여권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데다 총풍사건에 대해선 고문조작이라는 종전의 입장을 굽히지 않아 결정적인 정국타개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보기엔 아직 이른 것같다.
어쨌든 그동안 『검찰의 수사가 종결된 후 책임있는 발표가 나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세풍사건 사과를 미뤄왔던 이총재가 이 시점을 택한 데 대해서는 『뜻밖』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또 이총재 주변인사들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서상목(徐相穆)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하지 않거나,아예 서의원을 불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이총재의 이날 사과는 사실상 「무조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날 김대통령의 총풍사건 보강수사 지시로 또다시 들끓고 있는 당내 분위기와도 엇갈리고 있다는 인상도 짙다.
이총재가 이처럼 「의외」의 선택을 한 배경은 무엇보다 김윤환(金潤煥) 전 부총재, 이기택(李基澤) 전 총재대행 등 사정대상자를 중심으로 당내에서 가중되고 있는 정국정상화 압력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줄곧 조기 영수회담을 통한 「일괄타결」로 사정정국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총재에게 진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세풍사건을 이쯤에서 일단락지음으로써 향후 총풍사건 등을 고리로 한 대여(對與) 공세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산도 한 것 같다. 여기에 수개월간 불가피하게 각인된 「투사 이미지」를 벗고 수권야당의 긍정적 지도자상 정립을 위한 전기를 하루빨리 마련하려는 이총재 개인의 의지도 작용했음 직하다.
반면 사과의 동인(動因)을 외부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최근 여권의 고위관계자로부터 『이총재의 세풍사과가 없이는 영수회담도 없다』는 김대통령의 완강한 기류를 확인하고 「어쩔 수 없이」 사과시기를 앞당겼다는 얘기가 그것. 또 총풍사건과 관련, 오정은(吳靜恩)씨에 대한 보강수사에서 야당에 불리한 추가 진술과 증거가 나왔다는 사실이 전해져 이총재를 압박했을 것이란 추측이 여당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이총재의 이날 사과를 부정적으로 보며 재차 「전면적인 엎드림」을 요구할 태세여서 사과의 약효는 좀더 두고 봐야할 것같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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