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추워지면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距離)」다. 영국에서 먼저 거론됐다는 이 말은 자녀가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갓 만든 수프를 가져다 드릴 때 식지 않는 거리를 말한다. 부모와 적당히 떨어져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공양도 하고 급한 일이 있을 때 빨리 달려갈 수도 있는 거리다. 부모 자식 간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알뜰하게 배려도 하는, 영국인 다운 합리적 사고의 소산이다.■일본에서는 10년전 겨울 「수프」를 「장국(미소시루)」으로 바꿔 식지 않는 거리를 실측한 적이 있다. 주부 몇 명이 굴림자로 거리를 재 가면서 군데군데서 장국을 떠먹어본 후, 제 맛을 유지하는 거리가 얼마 쯤인가를 측정하는 작업이었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영상 4∼5도 정도의 날씨에서 「장국이 식지 않는 거리」는 1.8㎞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국인의 발상이나 일본인의 실증적 정신이 모두 지혜롭게 느껴졌다.
■지난 7월부터 우리의 가정 내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27일에는 술에 취해 어머니 집의 집기를 부수고 어머니를 폭행한 서울의 40대 남자가 법원으로부터 「2개월간 어머니 집 근처 100m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처분을 받았다. 부모자식 간의 이 「100m」와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의 사이는 무한대에 가깝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법도 벌써 사문화할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한국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가정폭력에 대해 경찰이 미온적으로 처리한다고 불평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5∼10건씩 접수된다. 여성이 남편의 폭행을 신고하면 『집안 일이니 상관말라』는 남편의 호통을 받고 경찰이 돌아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IMF 체제 이후 가정폭력이 늘고 있어 걱정이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가족 간의 애정을 수프처럼 따뜻하게 데워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